희망을 싹 틔우는 나눔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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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5면

“세계 여행 가이드 될래요”
SK 청소년 복지시설서 영어 개인지도 받는 여중생

지난달 20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청소년 문화쉼터 ‘희망오름’의 진로 탐색 시간. 인근 구암중 학생 8명이 자신의 꿈을 얘기하고 있다. 주변에는 1만7000가구의 대단위 임대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다. 희망오름은 SK가 2년째 운영하는 청소년 지원사업 ‘1318 해피존 관악점’의 다른 이름이다. 저소득층이나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이 많다.
임모(14)양의 엄마는 7살 때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아빠는 이삿짐 회사를 하느라 1년에 하루도 휴가를 내기 어렵다. 할머니·할아버지는 밤에 일을 나간다. 아침밥을 혼자 챙겨 먹어야 할 때도 많다. 어른들이 공부를 챙겨줄 수가 없다.
희망오름이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임양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세계를 누비는 꿈을 꿔왔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서울 관광고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영어에 소질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반에서 영어 성적이 2등이라는 영어선생님의 말을 듣고서는 신이 나서 매일 100개의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 임양은 내년에 SK텔레콤의 ‘해피 챌린지 펀드 도전 잉글리쉬 업’에 도전할 생각이다. 자기가 정한 목표점수까지 올리면 장학금과 어학연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방과 후부터 오후 9시까지 희망오름에서 1대1 영어지도를 받고 있다.
임양은 '탈레반 인질사태를 보고 외국문화 이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신문을 열심히 보며 해외문화를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7년 만에 치료 받게 됐어요”
현금 포인트로 희귀병 아이 치료 앞둔 어머니

대전에 사는 김정남(31·여)씨는 아들 대현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31주 만에 태어난 대현이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하나밖에 없고, 고환이 거꾸로 달려 있었다. 생후 1개월째 김씨는 대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대현이가 심장판막증,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데다 신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때 김씨에게 힘이 된 것은 불우이웃 모금기관 사랑밭의 후원이었다. 사랑밭은 김씨에게 매달 8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는데 김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렇지만 이 돈으로는 대현이 치료를 꿈도 꾸지 못했다. 몸무게가 7년 동안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김씨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딱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언론사 모금으로 6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에다 대출금을 보태 방 두 개짜리 전셋집을 얻었다.
또 11일 SK텔레콤 가입자 5000명이 5월부터 3개월 동안 모은 캐쉬백 포인트 65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대현이 치료를 할 예정이다.
“사랑밭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님들이 용기를 가지고 힘들어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신부전증이 찾아와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젠 살 방법이 생겨서 정말 용기가 난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부금 받아 공부 민사고 합격했어요”
공부방'보은' 봉사 나선 고교생

부산 출신의 성진우(16·가명)군의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있고 어머니는 보험 판매원을 하고 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중학생 시절 부산에서 단과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독해 공부만 좀 했을 뿐 제대로 된 영어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 부산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성군에게 ‘덕고장학금’이 새 길을 열어줬다. 이 장학금은 민족사관고가 매년 저소득층 중학생(5명)을 뽑아 방학 때 국어·영어·수학을 집중적으로 지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실력이 되면 민사고에 입학시켜 졸업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장학금은 횡성군수 등 지역 유지와 성우리조트 등 지역 기업들, 서울 등지의 개인 기부자들에게서 나온다.
성군은 “토플이 중3 때 100점(CBT 기준)이 겨우 넘었는데 덕고장학금 프로그램 덕분에 223점으로 올라가면서 민사고에 합격했다”며 “부산에서 단과학원을 다닐 때는 구경도 못했던 타임지 등을 읽으며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군은 항공 관련 비즈니스를 꿈꾸고 있다. 경영학과를 지망할 예정인데 미래에셋 장학금을 노리고 있다. 성군은 한 달에 한 번 학교 인근 공부방 봉사를 나간다. 그는 “저를 도와주신 분께 보답하고 싶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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