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신정아씨 e-메일 취재하고도 안 쓴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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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2면

한 주를 압도한 뉴스는 신정아 사건이었습니다. 흥행코드로 주목할 만한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권력·돈·명예, 그리고 누구나 훔쳐보고 싶은 사생활까지. 그래서 너무들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언론이. 좀 차분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불륜(不倫)과 불법(不法)을 나눠 생각해야 합니다. 불륜이 사적인 문제라면 불법은 공적인 문제입니다. 사적인 문제라면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공적인 문제라면 드러내 놓고 따져보고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 변양균씨와 신정아씨의 애정 관계는 사적이지만, 변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신씨를 도왔다면 공적인 문제가 됩니다.

중앙SUNDAY는 신정아씨가 최근 지인들과 주고받은 통화와 e-메일 내용을 취재했지만 매우 사적이기에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IN’과 인터뷰한 내용과 유사합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예일대 박사학위의 경우도 논문 작성을 도와준 사람(일종의 가정교사)에게 속았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대로 귀국해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변씨와의 관계도 부인했습니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선 ‘보석 목걸이는 그림을 선물하고 돈 대신 받은 것’이라 했더군요. 믿기 힘든 대목이 많았습니다.

중앙SUNDAY는 공적인 지위를 사용(私用)했을 가능성이 높은 변씨에 더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에 대한 주변의 얘기를 들어 12면에 기사화했습니다. 그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꼼꼼하고 성실한, 전형적인 경제 공무원 상인 듯합니다.

그런데 신씨의 주장이나 변씨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무관하게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혐의는 짙습니다. 권양숙 여사가 변씨의 부인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하면서 ‘힐러리’를 거론했다는 점으로 미뤄 어느 정도 확인됐나 봅니다. 힐러리가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에 의연히 대처했다는 점을 거론했다는 군요.

문제는, 클린턴은 르윈스키를 위해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지만 변씨는 신씨를 위해 직권을 남용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클린턴의 도덕성의 문제이지만, 변씨의 직권남용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세금과 직결된 불법행위가 됩니다. 변씨가 최근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씨의 직권 남용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가 별 죄의식 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그가 노무현 정부 들어 맡은 예산처 장·차관,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자리는 거의 모든 공직자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직입니다. 권력에 도취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쉬운 자리입니다. 1면에 게재한 관세청 공무원 기사도 공직사회의 집단적 도덕불감증을 말해줍니다.

이 같은 공직사회의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기보다 제도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입니다. 엄청난 예산 관련 권한을 분산하고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감사원을 국회로 옮기는 획기적 처방이 필요합니다. 예산을 감시하는 기관(감사원)이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부에 속해 있는 구조는 ‘권력 분산’이나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니까요. 이 경우 입법부(국회)가 실질적인 행정부 감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은 나눠질수록 좋습니다. 대선 후보 누군가가 공약으로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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