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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에서 온 편안함과 즐거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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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26면

1. 뱅앤올룹슨의 ‘베오비전9(PDP TV)’과 ‘베오랩5(스피커)’, ‘베오센터2(오디오)’로 꾸민 거실.

매끈한 곡선의 나무의자, 길고 가느다란 스피커, 아무 무늬 없는 뭉툭한 은스푼. 어딘가 북유럽 산과 호수의 곡선 또는 꼿꼿한 침엽수의 모습과 닮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테리어 잡지는 물론 최근엔 고급 호텔·레스토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처음엔 ‘이런 게 무슨 디자인 작품이냐’는 고객들의 반응도 있었어요.” 가구숍 ‘인엔’ 이경미 팀장의 말이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디자인에 익숙했던 우리나라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절정기는 흔히 1950, 60년대로 꼽힌다. 얀 야콥슨·한스 베그너·베르너 팬톤….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활약하던 시기다. 물론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프리츠 한센·조지 젠슨·뱅앤올룹슨(덴마크), 일렉트로룩스·H&M·플레이샘(스웨덴), 아르텍·마리 메코(핀란드) 등의 유명 브랜드들이 그 예다.
꽃병부터 최신형 LCD TV까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꿰뚫는 컨셉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단순함과 기능성, 자연친화성이다.
“아주 단순하고 전혀 특별하지 않죠.” 지난달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콤플로트 디자인’의 디자이너 보리스 벌린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철제 의자를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뜻의 ‘NON’으로 이름짓기도 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유명 디자이너로서는 겸손해 보이기까지 한다.

2. 얀 야콥슨이 1955년 디자인한 ‘시리즈 7’ 의자. 3.4. 스웨덴 장난감회사 플레이샘의 ‘스트림라이너’와 ‘제트라이너’.

오래가는 단순미
사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있어서 단순하다는 것은 일종의 칭찬에 가깝다. 벌린의 설명대로 “심플하고 보편적인 디자인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함’을 강조하는 건 디자인이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 단순하고 좋은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한다. 얀 야콥슨이 1950년대 디자인한 잘록한 허리 모양의 ‘앤트’나 동그란 모양의 ‘에그’ 같은 의자들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산돼 팔리고 있다. 뱅앤올룹슨의 ‘오디오 베오사운드 9000’은 내부의 기술만 업그레이드할 뿐 외관 디자인은 10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 속에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더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 독일의 미니멀리즘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가 한 이 말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들이 가진 신념이기도 하다.

일렉트로룩스의 무선 진공청소기 ‘에르고 라피도’는 ‘청소기를 거실로 나오게 한 디자인’으로 평가된다.

편리한 기능성
단순하다고 성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사용자를 편리하게 해주는 기능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된다.
일렉트로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선 스틱 청소기 ‘에르고 라피도’는 ‘청소기를 구석이 아닌 거실로 나오게 한 디자인’으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미적인 면만 생각해 나온 디자인은 아니다. 청소할 때 전선이 발에 걸려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것을 우려해 과감히 선을 없앴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좁은 집 안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작은 스트레스까지 감지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션 카니 이사는 일렉트로룩스의 디자인 컨셉트가 ‘편하게’와 ‘즐겁게’라고 강조했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가 스웨덴의 조립식 가구 이케아이다. 우아함과 화려함 대신 실용성을 택한 이케아는 가격까지 합리적이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베르너 팬톤이 폴리에스테르로 제작한 ‘팬톤 체어’는 여러 의자를 쌓아둘 수 있는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보리스 벌린도 그의 히트작 ‘구비(Gubi) 체어’를 디자인할 때 여러 겹 쌓아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자연을 닮은 디자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유독 자연에서 착안한 게 많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유리꽃병 ‘사보이’는 구불구불한 면이 핀란드 피오르 해안을 그대로 닮았다. “세계를 가장 바람직하게 규격화한 구조는 자연”이라는 그의 철학이 묻어난다.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대표작인 ‘베오센터 2’는 풍뎅이, ‘베오랩 4000’은 나뭇잎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일렉트로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로봇청소기의 이름이 ‘트릴로바이트’, 즉 삼엽충인 것도 마찬가지다. 마리메코는 커다란 꽃무늬인 ‘유니코’ 패턴으로 잘 알려졌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모양뿐만 아니라 소재에서도 자연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못질이나 장식 없이 나무를 구부려 만드는 벤딩 우드 가구가 그 예다. 모던함을 표현하는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할 때도 ‘알루미늄 그 자체’의 느낌을 살리는 편이다.
“우리는 재료를 속이지 않아요. 우리가 만든 제품이 나무처럼 보이면 그건 나무로 만든 거고, 알루미늄처럼 보이면 그게 바로 알루미늄이죠.” 지난달 인터뷰에서 뱅앤올룹슨의 수석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가 한 이 말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소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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