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도 오른쪽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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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오른쪽 길, 이쪽저쪽 잘 보고 길을 건너갑시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불렀을 법 한 동요 ‘네거리 놀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등하교 길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왼쪽으로 길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 어린 시절의 교육은 아무리 오래 가도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법. 서른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도로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이 동요가 입안에 맴돌아서 애써 왼쪽 길로 걷게 된다.

왜, 좌측보행을 하게 된 걸까?
자동차의 통행방식에는 세계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자동차가 도로의 오른쪽을 다니는 우측통행(미국, 유럽)과 왼쪽을 이용하는 좌측통행(영국, 일본). 그런데 자동차가 우측통행이면 사람도 우측통행을 하고 자동차가 좌측통행이면 사람도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세계적인 관행이다. 그래야 동선의 교차를 피하고 통행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사람은 '좌측' 자동차는 '우측'인 걸까?
1905년 대한제국 시절 우측통행을 규정했으나 일제시대인 지난 1921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좌측보행으로 변경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46년 미군정은 차량통행은 우측으로 바꿨지만 사람들의 보행방식은 그대로 두었고, 우리 정부도 1961년 도로교통법에 좌측보행을 명시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만 유독 ‘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오른쪽 길’이 된 것이다.
이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의 보행방식을 정한 규정이었지만, 인도나 지하철 보행통로 등 교통시설까지 확대돼 좌측통행은 관습적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좌측통행은 신체적 특성이나 교통안전, 국제관례 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측보행으로 바뀔까?

192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시행된 ‘좌측통행’을 퇴출시키고, 86년 만에 우측보행 부활을 추진중인 송파구가 ‘우측보행 실천운동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확산운동에 나섰다. 이에 우측통행범국민운동본부,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녹색도시연구소, 송파구녹색어머니연합회 4개의 범시민단체들이 뜻을 같이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오른손잡이로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편리하고, 인도 내에서 갑자기 차와 마주칠 경우에도 오른쪽으로 피해야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다. 또 영국이나 일본, 홍콩 등 상당수 국가가 우측보행을 하고 있는데다, 회전문이나 국제공항 게이트, 일부 전철역 개찰구 등에서는 이미 우측보행이 정착돼 있다는 것.
송파구는 잠실역 등 관내 주요지점에서 월 1회 범시민 우측보행 실천 캠페인을 전개하고 우측보행에 대한 설문조사, 의식 전환 교육 및 토론회, 공감대 형성을 위한 간담회, 우측보행지장 시설물 정비 등 우측보행 정착을 위한 ‘우측보행 실천운동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골목호랑이할아버지, 녹색어머니, 모범운전자회 등을 통한 계도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9월부터 두 달 간 주부구정평가단원이 구민 1000명을 대상으로 우측보행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12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송파구 소속 공무원 1400명을 대상으로 의식전환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시민단체 및 어린이집 교사·직능단체 회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 및 토론회 등도 실시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및 관내 18개 지하철역을 비롯해 버스정류장·대형 유통시설 등 다중시설을 대상으로 우측보행 지장시설물에 대한 조사 및 정비를 병행할 방침이다. 공공기관 계단 및 출입구, 성내천, 석촌호수 등 주요 산책로 바닥에는 우측보행 표시 및 안내판을 부착하기로 했다. 또 초등학교 교과서 및 도로교통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
건설교통부는 한국교통연구원에 우측보행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주는 등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연구검토에 착수했다. 건교부는 보행방식 변경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날 경우, 내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홍보활동과 공공시설물에서의 보행방법 개선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86년 동안 지켜온 좌측보행이냐? 우리의 본래의 통행방식이자 몸에 편한 우측보행이냐? 만약 당신에게 표를 구한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최경애 객원기자 doongj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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