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 30일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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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세자르상 음악상을 받기도 한 프랑스 출신 브루노 쿨뢰의 음악은 신비스러운 여성의 목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더해 동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에 한층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유럽에서 만들어졌지만 수채화풍의 기법이 마치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 한 편이 우리 관객을 찾아온다. 30일 개봉하는 '곰이 되고 싶어요'다.

화면의 색칠하지 않은 여백 그 자체로 눈과 얼음이 뒤덮인 순백의 세계를 표현하는 도입부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색에 친숙한 관객들에게는 사뭇 다른 세계로 들어설 채비를 하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주의 깊은 관객이라면 눈밭을 뛰고 뒹구는 곰을 묘사하는 기법 역시 이채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고유의 윤곽선을 일부 없애버려 흰 곰과 흰 눈이 하나로 어우러지곤 하기 때문이다.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그림체에서만이 아니다. 차차 아기에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따라가자면 자연과 인간의 엄격한 이분법은 점차 희미해지고, 결말에 이르면 인간의 '문명'이 '날것'의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통념 역시 산산이 깨져버린다.

이야기는 북극에 가까운 그린랜드에서 곰과 에스키모 부부가 각각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며 시작된다. 그러나 흰곰 부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기를 잃는다. 실의에 빠진 엄마 곰을 보다 못해 아빠 곰은 갓 태어난 에스키모의 아기를 훔쳐온다.

처음에는 아기를 본체만체하던 엄마 곰은 차츰 이 털없는 새끼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며 담뿍 정을 쏟게 된다.

반면 에스키모 엄마는 비탄에 잠겨 날마다 눈물을 쏟고, 분노한 아빠는 아기를 훔쳐간 곰을 끈질기게 추적하러 나선다.

한 아이를 둘러싼 사람과 곰의 부모 다툼은 사람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듯 싶지만 이야기는 몇 굽이를 거쳐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소년이 자신의 의지로 사람이 아닌 곰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은 인간중심의 관점에 익숙한 어른들에게는 적잖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아무리'뜻하는 건 뭐든 될 수 있다'고 아이들을 격려하는 부모라도 그 '뜻'이 '곰이 되는 것'인 경우를 상상이나 해봤을까. 소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쉽지 않은 결심을 하는 에스키모 부모의 모습은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곰이 되기 위해 세 가지 시련을 자처한 소년이 스스로의 능력만이 아니라 매번 주위의 도움으로 시련을 헤쳐나가는 설정 역시 함축적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 그대로다. 산의 신령이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장면처럼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표현기법을 한껏 살린 연출이 곳곳에서 재미를 돋운다. 아기 때부터 소년을 지켜보는 까마귀는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덴마크의 동화가 원작인 '곰이 되고 싶어요'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키리쿠와 마녀'등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프랑스의 레아마퇴르가 제작했고, 덴마크 애니메이션의 거장 야니크 하스트럽이 연출을 맡았다.

이제 60대 중반에 이른 이 감독은 '애니메이션=어린이용'으로 치부하기에는 놀랄 만큼 도전적인 주제를 이 작품에 담아냈다.

나뭇가지.막대기.조약돌과 사람의 목소리.오케스트라 연주를 두루 활용해 만들었다는 음악은 시종일관 이 환상적인 동화에 한층 신비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제작진은 캐나다 북부에 사는 에스키모들의 실제 삶과 흰 곰의 생태를 연구한 뒤 약 20개월에 걸친 그림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전체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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