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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의패션리포트] 브랜드 대신 컨셉트를 입는다 Multi-Sho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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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하나, 브랜드는 여럿

 멀티숍은 한 매장 안에서 여러 개의 브랜드를 쇼핑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들에게 멀티숍의 유행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개의-’라는 의미의 접두어인 ‘멀티(multi-)’를 붙인 멀티숍이란 말이 국내에 통용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된다. 매장 하나에 브랜드 하나인 기존의 스토어와 달리 멀티숍은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특정한 컨셉트 아래 모아 팔기 때문에 ‘편집 매장’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매장이 유행하게 된 건 2000년 가을,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분더샵’이라는 매장을 청담동에 열면서부터다.

 그 뒤 ‘무이’ ‘쿤’ ‘어빙 플레이스’ 등 강남 쇼핑가에서는 국내에 단독으로 수입되지 않는 소규모 브랜드의 아이템을 판매하는 편집 매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가장 보수적인 유통 형태 중의 하나인 백화점들조차 멀티숍 개념을 도입했다. 공급자 위주 판매 행태를 벗어나 소비자 취향 위주로 편집된 상품구성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남성팀 편집매장 담당인 이혜원 과장은 “국내에 직수입된 럭셔리 브랜드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꽤 알려졌다”며 “보다 특별하고 희소성이 있는 디자이너 레이블을 찾는 고객들을 겨냥해 멀티숍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아직 멀티숍이 눈썰미 높은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제품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백화점이 지향하는 고급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1)데일리 프로젝트의 2층에 마련된 갤러리 공간 (2)밀라노 10 코르소코모 2층의 아트 북 스토어 (3)청담동 데일리 프로젝트의 1층 패션 편집 매장 (4)‘슬로 쇼핑’을 내세우는 10 코르소 코모의 매장 (5)데일리 프로젝트 2층에 마련된 컬트 매거진 라이브러리.

‘멀티숍’에서 ‘컨셉트숍’으로

 이런 멀티숍에 또 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옷이나 패션 액세서리만을 편집 판매했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점이나, 카페, 갤러리 등을 포함하는 복합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미 파리나 뉴욕, 런던, 밀라노 등의 패션 선진도시에서는 이런 ‘컨셉트 스토어’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외의 대표 멀티숍들은 ‘테마 파크’처럼 여러 영역의 제품들을 한가지 컨셉트로 묶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삼성패션연구소 함지승 연구원)

 해외 멀티숍의 바이블 격인 프랑스 파리의 ‘콜레트(Colette)’는 전 세계 패션인들이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다. 1997년 문을 연 뒤 끊임없이 트렌드를 이끄는 아트북·디자인북, 음악·영화 DVD, 소형 전자 제품 등 영역을 뛰어넘는 상품들을 매장에 내놓는다. 여기서 제안하는 트렌드는 단순히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뿐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멀티숍들은 해당 시즌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 영향을 미쳤던 음악·영화·사진·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요소 모두가 조화될 때 트렌드가 완성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콜레트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밀라노의 편집 매장 ‘10 코르소 코모’도 편안한 카페와 갤러리, 아트 북 숍이 함께 있다. 이곳은 ‘슬로 쇼핑(Slow Shopping)’을 모토로 내세우며, 천천히 여유 있게 즐기는 쇼핑이 특징이다.

 국내에도 이런 흐름이 전파돼 패션제품 위주였던 멀티숍에 아트 북이나 카페, 갤러리 공간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 청담동에 문 연 ‘데일리 프로젝트’는 이러한 복합공간의 전형적인 예. 오전 8시 문을 열어 밤 11시에 닫는 1층의 카페를 비롯해 갤러리, 헤어 살롱, 문구점, 패션 숍, 이벤트 홀 등 다양한 기능의 공간들이 모여 있다. 여기에 들어서면 모든 이들이 ‘멀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크로스오버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의 프로젝트 매니저 이정희 부장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며 “다양한 이들이 아이디어와 패션이라는 코드로 모일 수 있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공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한자리서 옷사고, 책사고, CD 사고

 이런 매장에서는 옷을 사러 와서 책을 사가지고 갈 수도 있고 갤러리 관람을 왔다가 음악 CD를 살 수도 있다. 소비자의 동선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선다는 의미에서 ‘유저 프렌들리(user-friendly) 컨셉트 스토어’인 셈이다. 여기서는 유명 브랜드에 집착하는 ‘막가파식 쇼핑’이 자랑이 아니다. 여보란 듯 붙어있는 브랜드의 이름을 보고 제품을 고르기보다는 나의 컨셉트에 맞는 숍에 들러 취향에 맞는 물건을 고르기 때문이다.

 값비싼 제품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런 경향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최근 백화점 내 남성 캐주얼 멀티숍에선 수입 브랜드의 가격대를 대폭 낮췄습니다. 보다 젊은 층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가격대의 멀티숍에 대한 수요를 예측한 결과입니다. ‘2세대 편집 매장’이라 부를 수 있겠죠.”(신세계백화점 이혜원 과장)

 다양한 기호와 폭 넓은 정보력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는 이런 ‘2세대 편집 매장’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그래서 이 새로운 유통형태가 문화의 크로스오버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강주연 패션 잡지 ‘엘르’ 수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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