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덩어리 도매시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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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매인들의 경매참여 거부와 법시행의 6개월 유보로 빚어진 농안법 파동이 도매법인과 공무원의 유착내지 대국회로비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농수산물의 유통단계 축소와 이에 반발하는 중매인들의 집단이기주의 표출이 당초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의 전면수사방침이 서면서 비리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도시가구를 다같이 위한다는 미명아래 온갖 비리와 횡포가 도매시장 안에서 저질러지고 있었고,이번 농안법 파동도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검찰의 수사관점이나 농어촌발전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이 단초를 연 중매인에게도 잘못이 많지만 이보다는 도매시장을 운영하는 8개 도매법인의 부조리와 횡포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우선 상장수수료에서 거둔 농수산물유통기금과 정부가 지원한 출하촉진자금 등을 자신들의 업무추진비로 무단 전용하고 있다.
이 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관계공무원에게 흘러들어갔고,특히 농안법 개정 과정에서 대국회 로비에 쓰여졌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생산자를 보호해야 할 이들은 청소비·하역비 등을 제멋대로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생산자가 땀의 대가를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쓰고,소비자들이 파 한단 값이라도 아끼려는 이곳에서 이들은 부당하게 거둔 돈을 불명확한 곳에 흥청망청 쓴 셈이다.
만약 이들의 대국회 로비혐의가 사실이라면 국회,특히 민자당도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중매인보다 도매법인이 더 문제인데도 중매인의 도매기능만 제거한 개정 농안법을 마치 개혁입법인양 자랑한 것이 모두 눈감고 아웅으로 돌아기기 때문이다. 여야는 아직 로비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나 법개정 경위가 일부 불분명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검찰의 수사가 착수된 이상 도매시장내에서의 중매인·도매법인의 발호,관계공무원과의 유착혐의 등을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도매시장이 정화돼야 생산자·소비자가 다같이 보호되는 유통기능의 단순화가 비로소 이룩될 수 있다.
정부는 사건이 터지자 1년의 법시행 유보기간을 허송한 책임을 물어 고급공무원 3명을 해임했고,신임 국무총리는 법을 어기게 됐다고 당정회의에서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농안법 파동의 수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비리구조를 척결한 다음 문제의 농안법을 전면 개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습 수순일 것이다.
농수산물의 유통구조 근대화는 생산혁신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 파동은 유통근대화의 상징인 도매시장역할과 기능을 잘못 정한데서 비롯됐다. 도매시장·도매법인·중매인의 기능이 일원화되고,생산·소비자가 협동조합 등을 통한 직거래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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