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활새풍속>1.대담해진 애정표현-대낮 카페서 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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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생활과 풍습이 알게 모르게 급변하고 있다.불과 몇해전이 먼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다.
가정에서,거리에서,직장에서,우리는 늘 새로움과 만난다.어느새크게 달라진 삶의 풍경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편집자註] 『에그머니….』 지난 3월4일 오후3시 친구와 차한잔 하려고 서울압구정동 K교회 부근 한 카페에 들렀던 金마리씨(44.여.서울동부이촌동 리버사이드빌리지 E-406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긴 소파가 배치된 밝은 실내에 손님이 한사람도 없어 홀가분하게 창가쪽으로 앉으려다 하마터면 사람을 깔고 앉을 뻔했기 때문이다.
소파에는 20대후반의 젊은 남녀가 죽은듯이 서로 포옹 한채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이들이 나가고 난뒤 한명뿐인 여종업원에게 충고를 겸한 항의를 하자 『손님 하는일,일일이 참견할라치면장사하지 말아야 해요』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하더라 며 어이없어했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10년여 만에 최근 귀국한 그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거칠 것 없는 애정표현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실내뿐이 아니다.요즘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탔다가 죄라도 지은듯 제풀에 얼굴이 벌개져 당황해하는 경우가 적지않다.남들의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나 승용차안에서 진한 포옹을 하거나 심지어 입을 맞추는 남녀,지하철에서 남자친구의 무릎에 버젓이 앉아 있는 10~20대 여성을 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3월초 남편의 칠순잔치를 맞아 제주도 여행을 갔던 김경숙씨(63.여.성남시분당동 샛별마을 삼부아파트404동403호)는 허니문 하우스 주변을 산책하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곳에 이르러 황급히 얼굴을 돌려야 했다.
한 신혼부부가 사진효과를 위해 살짝 입맞춤하라는 사진사의 주문이 떨어지자 내친김에 아예 진하게 키스를 해버려 관광객들의 좋은 눈요깃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의 입맞춤은 이제 일반화된 실정.2년전 결혼한 안재우씨(31.성호전기 실장)는 『예식후 사진을 찍을 때 사진사의 요구등에 의해 신부와 키스하는 친구는 10명중 8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KBS-TV가 4백명의 젊은 기혼남녀를 대상으로실시한 「한국부부실태」조사에 따르면 만난지 1개월이내에 입맞춤을 한 경우가 21.55%,그중에서 만난 당일 한 경우도 3%나 돼 애정표현이 과감해진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 다.
중.고생들의 애정표현도 예전같지 않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이 지난해 서울의 중.고생 3백57명을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이성과 사귀는 학생은 32.7%,이중 1주일에 한번이상 데이트하는 학생은 44%(매일 11.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포옹.키스.성 관계를 경험한학생도 9%나 돼 놀라움을 안겨준다.
노인들도 이제 젊은이들 못지않다.사별한 노인들을 위한 만남의기회를 자주 주선해 온 결혼중매업소인 원앙연구원 박지윤원장은 『노인들도 이제 남들 보는 앞에서 어깨를 껴안는다든지 손을 잡는 정도는 스스럼이 없다』고 전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중년부부들의 소위 「앙코르결혼식」도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고 재충전하기 위해 연출하는 과감한사랑표현 방식의 하나.
이같은 애정표현의 변화에 대해 白尙昌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은 『오랫동안 억제됐던 욕구가 짧은 시간에 불어닥친 민주화바람,외국문화의 유입과 모방심리 때문에 급격히 표출된 상태』라고 분석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이화여대 李根厚교수(신경정신과)는 『판단기준은 세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데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며 『다만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판단력을 길러주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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