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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 질적발전 큰 공헌/30일 타계한 김호길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한때 노벨 물리학상 후보 거론
고 지파 김호길총장은 한국의 과학교육을 질적으로 한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세계 물리학계에서 한때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명망있는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개인적인 명예보다는 「민족과학」의 정립에 더 큰 비중을 둔 사람이었다.
포항공대가 불과 설립 10년도 못돼 국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공과대학중의 하나로 꼽힐 수 있던 것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집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85년 포항공대의 초대학장으로 선임된 그는 『그깟 지방대학으로 무슨 과학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대다수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1개월여에 걸쳐 미·영·불·독 등 4개국을 발로뛰며 우수한 교수진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그는 당시 귀국을 망설이는 재외 과학자들에게 『우리가 왜 공부하느냐,언젠가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느냐』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포항공대와 인연을 맺기 2년전인 83년 럭키금성 구자호회장의 초빙으로 연암공전의 학장을 맡게 된 것이 미국서 영주귀국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 그전부터 김 총장의 자질을 익히 알고 있던 포철 박태준 전 명예회장이 당시 이모이사를 시켜 은밀히 수십차례의 스카우트 작전을 벌인 끝에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는 포항공대의 출범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그는 총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들어올 때(입학)보다는 나갈 때(졸업)의 모습이 중요하다』며 생전에 포항공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수상자가 배출돼야 한다고 주문하곤 했다.
그는 몇해전 기자와의 만남에서 『중학시절(경북 안동중) 우리나라가 후진성을 면치못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낙후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후 이같은 「민족과학」관을 키워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총장은 최근 몇년동안 한국최초의 방사광가속기 건설사업에 눈코뜰새없이 매진해왔으나 준공을 불과 몇개월 남겨놓고 운명해 주변 사람들은 더욱 아쉬워하고 있다.
매우 적극적인 성격과 논리정연한 달변가에 고집통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자연법칙은 신도 바꿀 수 없지요』라는 베스트셀러를 내놓았으며 개각때 마다 장관감으로 지목될 정도로 과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오기도 했다. 재료공학자로 최근 경북 한동대 초대총장으로 선임된 김영길박사(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는 형제 과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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