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근로자 哀歡 서린 단칸방 벌집 개조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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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구로수출산업공단 주변 구로동과 가리봉동일대 주택가는 요즈음 집수리로 번잡하다.
70년대 중반부터 10여년동안 우리나라 수출의 메카라고 해도표현이 지나치지 않던 서울구로수출산업공단 근로자들의 애환이 서린「벌집」이 요즘 싼 월셋방을 찾는 도시민들의 주거지역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 구로공단 미혼 근로자의 「안식처」였던 구로동.가리봉동일대에 형성된 벌집에 최근에는 재개발등으로 갈 곳이 없어진 전세입주자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이에따라「2~4평 크기의 방.부엌 하나씩」이던 벌집 2~3개의 벽이 헐리고 3~4명의 식구가 살 수 있는 다소 큼직한 규모로 개조되고 있다.아예 집을 완전히 뜯고 3~4층의 다세대나다가구 주택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벌집은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구로공단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에겐 최상의 보금자리였다.대부분의 벌집들이 몫돈을 요구하지 않는 월셋방인데다 공장에서 가깝고방세도 저렴해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는 지방 젊 은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거지였으며 일터를 소개해 주는 정보전달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산업이 노동집약산업에서 중화학공업 위주로 전환되면서 노동집약산업의 대표적 수출전진기지였던 구로공단 공장들이 하나 둘 폐업하거나 외국으로 이전하면서 근로자들이 줄어들자 비는벌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욱이 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인력난과 고임금.환경규제 등으로 공장의 이전.폐업이 속출,근로자들의 수는 더욱 현격히 줄어들어 지금은「세놓음」이라는 벽보가 벌집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을 정도다.
가리봉3동 Y부동산 張모씨(60)는 『예전에는 나오기가 바쁘게 나가던 벌집들이 90년대에 들어서자 찾는 사람이 뜸해지더니요즘에는 총 2천여동의 벌집 가운데 3분의1 정도가 비어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는 방이 늘어나는데 찾는 사람이 없자 벌집 소유자들은 지난해부터 방 1~2개를 트고 연탄보일러를 기름.도시가스 보일러로 바꾸거나 다가구.다세데.연립주택으로 개조해 값싼 집을찾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방세는■여전히 월 세이고 크게 오르지도 않았다.보증금 30만~50만원에 월세 12만원 하던 벌집이 방은 2~3배로 커졌어도 보증금 1백50만~2백만원,월세 12만~14만원 정도면 입주할 수 있다.
2층짜리 건물에 25개의 방을 들여 세를 놓고 있는 宋모씨(45.가리봉3동)는 『무작정 빈방을 방치할 수 없어 방 2~3개를 트고 새로 도배했더니 방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方情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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