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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1600년 숨결 품고 세계 무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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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원주치악문화예술회관에 전시된 한지로 만든 사물놀이 인형을 어린이들이 살펴보고 있고(사진·上), 한지 패션쇼에서 남녀 모델이 한지로 만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강원일보·한지문화제위원회 제공]

지난 5일 저녁 원주시 명륜동 종합운동장 옆 특설무대. 많은 비가 내리는 데도 500여 명의 시민이 특설무대에서 열린 한지패션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은은하고, 때로는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모델이 움직일 때마다 관객은 이들이 입은 옷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특히 하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남·녀 모델이 등장하자 작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옷 맵시, 튀지 않는 광택 등 한지의 특성을 살린 턱시도와 드레스는 고급 소재로 만든 옷처럼 아름다웠다. 이날 패션쇼에 선보인 세 벌의 한지 양복과 드레스는 패션쇼 이후 9일까지 이어진 의상 전시에서도 화제였다.

 ‘한지로 양복을 만들어?’ ‘불편하지 않을까?’ ‘빨아도 괜찮을까?’ 같은 의문을 품고 전시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은 생각을 고쳐 먹었다. 한지 양복이 울과 실크 같은 기존 소재의 옷과 견주어 손색이 없는 데다 항균성이 높고 빨리 말라 기능성이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문화제를 찾은 관객 50여 명이 한지 수제(핸드메이드) 양복을 주문했다. 상지영서대 김양진(패션스타일리스트과)교수는 “ 한지로 옷을 만드는 것이 일반 직물로 옷을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며 “대중화를 위해 더 모니터링 해봐야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1600년의 숨결을 지닌 한지가 고급 양복으로 진화했다. 전통이 현대로, 문화가 생활로 탈바꿈하며 산업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지의 진화=1999년 원주한지문화제가 처음 열렸을 때만해도 한지 의상은 말 그대로 한지를 염색하고 재단한 것이었다. 다소 뻣뻣하고 맵시가 떨어져 실용성이 없었다. 이후 수의(壽衣)와 일회용 가운 같은 한지 상품이 개발됐지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실제 생활에 활용할 정도의 상품이 등장한 것은 한지로 실을 만들고, 이를 천으로 짠 한지직물이 개발된 2005년부터다. 그 해 한지문화제에 참여한 피엔에스코리아는 한지직물로 만든 남성 자켓과 넥타이를 선보였다.

 2006년 한지문화제에는 청바지도 출품했다. 자켓은 일반 소재에 비해 부드러움이 덜하고, 청바지는 세탁할 때 조금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산업화 가능성은 인정받았다. 회사는 더 부드럽고 실용적인 한지직물을 개발해 ‘파피텍스’로 이름 붙이고 니트, 스카프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었다. 프랑스 파리 텍스월드, 미국 라스베이거스 매직쇼에 참가하는 등 해외 마케팅에도 주력했다. 회사 이름을 닥나무를 상징하는 ‘닥센’으로 바꿨다.

 올해 처음 한지문화제에 참여한 ‘지누리’는 양복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한지직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상품도 개발한 회사. 성남시 분당에 직영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한지문화제에 양복과 드레스 원단을 소개했다. 침구세트, 속옷, 양말, 넥타이도 선보였다. 한지 양말은 땀을 잘 흡수하고 냄새가 덜 나 고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회사 대표 김동조씨는 “모자와 양말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쓸 수 있는 상품을 개발, 대한민국 대표 관광상품으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한지 세계화 추진=한지개발원은 한지 브랜드화를 위해 ‘멀버리(MULBERRY)’를 국제특허상표로 출원했다. 한지의 세계화를 위해 외국인도 알 수 있는 뽕나무를 뜻하는 ‘멀버리’를 정했다. 한지개발원은 2008년부터 양복, 간호사용 가운, 골프바지, 스카프, 넥타이, 슈트케이스, 아동복, 유아용 직물기저귀 등 300여 품목의 상품을 개발해 ‘멀버리’ 상표로 출하할 계획이다.

 닥센도 마산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예술성을 상품에 접목한 ‘문신닥센’ 상표를 내놨다. 10월 2일에는 청계천 한국관광공사 앞 광장에서 ‘문신닥센’ 을 알리는 패션쇼를 열 계획이다. 이삼용 대표는 “2008년 파리와 런던에 닥센 매장을 열 계획”이라며 “다양한 아트상품을 개발해 이미 세계시장에 진출한 일본 화지 상품 이상의 브랜드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원주=이찬호 기자

◆한지직물=한지를 가늘게 커팅(잘라)해 실을 만들어 천을 짠다. 이때 용도에 따라 한지실의 함량을 달리한다. 이번에 양복 원단으로 제공된 한지직물은 한지 35%, 울 35%, 나머지는 실크를 섞어 만들었다. 속옷은 한지와 면을 절반씩 섞었으며, 양말은 한지 70%에 폴리에스테르 30%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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