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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사태 초기 대응 미숙 지역전문가 육성 과제 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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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 초기 우리 정부는 상황 파악 단계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언론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현지 사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과 지역전문가 부재(不在)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위험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전문가 육성에 힘써야 한다. 서석준 부총리 등 우리 정부요원 17명이 희생된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 직후 급거 귀국한 전두환 대통령이 가장 먼저 지시했던 것이 버마 지역전문가 육성이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은 해외에서의 비상사태 발생 시 즉각적이며 효율적인 대응이 늦은 것은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특수지역 전문가 육성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국가의 힘은 국가가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재풀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인재풀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는 이번 아프간 사건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대응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아프간이 중동지역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정부는 아랍어 전공 교수를 먼저 찾았지만, 그들 가운데 탈레반 언어인 파슈툰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와 학계는 균형적인 국익 확보를 위해서도 그동안 관심 밖에 있던 아프리카·서남아시아·동남아시아 등 소외된 특수지역 전문가를 육성하고, 이들을 통해 특정지역과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

 다음으론 기존의 특수지역 연구자, 현지 장기체류자, 다년간 비즈니스 경험자 등 인적자원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외교통상부 동남아과에서 운용하고 있는 국가자문단 식의 체계적 인적자원 관리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 후진국과 선진국을 번갈아 냉탕·온탕식으로 돌리는 순환형 인사시스템으로는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기 어렵다. 아울러 외통부·산업자원부·국가정보원 등 국제 업무 비중이 높은 정부 부처는 민간전문가를 발탁하는 개방형 인사제도를 대폭 확대하고, 대학·연구소·비정부기구(NGO)등 민간부문에 대한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파견 연수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서도 지역전문가 육성은 반드시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동맹·우방이 중시되던 냉전시대의 국제정치와 달리 21세기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는 전통적 우호관계보다 국가이익이 가장 우선시되는 치열한 국익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가 우선돼야 하며, 그 첩경은 지역전문가 육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경찬 영신대 교수·국제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