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UR협정 타결 첫해 맞는 농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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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농사철이 다가왔다.그러나 요즘 농민들은 수확을 기다리는 뿌듯한 심정으로 씨를 뿌리기 보다는 어떤 작물을 심어야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쌀농사를 짓는 대신 논을 갈아엎고 과일나무를 심는 바람에 과수묘목값이 뛰고 있으며,이에따라 수확기에 일부품목의 과잉생산이 우려되고 있다.또 이농현상이더욱 두드러지고 논값이 떨어져 농민들이 재산상의 손실까지 입고있는 실정이다.정부의 권장에 따라 쌀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위탁영농회사가 많이 생겨났으나 수익성 이 떨어져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곳이 적지않다.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의 타결이후 첫 해를 맞는 농촌의 모습을 현장 진단해 본다.「편집자註」 ◇작목선정 혼란=벼농사의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 도에서는 경쟁력있는 대체작물을 심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일부 인기품목에 몰리는 바람에 과잉생산에 따른 값폭락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경남단감농협에 따르면 현재 1천2백50여 농가에서 1천8백정보에 연간 1만5천t의 단감을 생산하고 있는데 재배면적이 최근 몇년동안 연 20~30%씩 늘어나는 바람에 인건비 상승등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단감수확철인 10월과 11월에는 하루 인건비가 4만원까지 올랐고 특히 가지치기는 7만원에 이르고 있으나 사람을 구하지 못해 단감을 수확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각 농가에서는 단감재배에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자 논에 단감나무를 심는등 재배면적을 마구잡이로 늘리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논에는 습기가 많기 때문에 배수장치가 없으면 재배에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난2월 12~13년생 단감나무 70여그루를 논에 심은 경남창원군동면봉강리 洪鳳奭씨(59)는『논농사의 수지가 맞지않아 감나무를 심었는데 잘 자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2만여평의 단감과수원을 갖고 있는 창원군진영읍여래리 金碩純씨(42)는『이런 식으로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결국 제주도 밀감처럼 언젠가는 모든 단감재배농가들이 다 죽게된다』며『정부가 적정한 재배면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지방에서는 사과를 대체작목으로 택하는 농가가 급증하면서 사과나무 1년생 한그루 값이 5백원에서 최근 1천8백원으로 3.6배 올랐다.
경북청송군의 경우 특용작물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버섯과 약초등2개작목에 대해 희망재배면적을 접수받은 결과 1만평방m에 이르렀다.지원요청자금 규모만도 30억원에 달하고 있다.이는 지난해2천8백평방m보다 3배이상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수입개방에 대비한 첫번째 사업으로 감귤의 과잉생산을 막기위해 감귤원에 대한 간벌을 실시했으나 일부에서는 불투명한 장래를 우려해 조생감귤을 다시 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귀포에서 감귤원을 하고있는 金모씨(49)는『당국에서 간벌을 요구해 전체면적의 20%에 대해 간벌을 실시했으나 대부분의농가에서 간벌한 자리에 2~3년생 조생감귤을 심고있어 앞으로 5년이 지나면 과잉생산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 고 말했다.
곡창지대인 전남지방에서는 쌀농사에 대한 불안이 더욱 심하다.
전남화순군도곡면 粱朝承씨(39)는 10만여평의 논농사를 지었으나 올들어 다른 작목으로 전환했다.
粱씨는『기계를 조작할 사람조차 없어 농사가 어렵다』며『논농사규모를 1만평정도로 줄이고 참외.화훼등 비닐하우스 재배로 돌아섰다』고 말했다.한편 올해 대파값이 크게 오르자 농민들이 앞다퉈 대파를 심는 바람에 전남도의 경우 대파재배면 적이 30%나늘어나 과잉생산에 따른 값폭락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전남구례지역에서는 10여년전부터 오이생산을 통해 농가소득을 높여왔으나 최근 2년사이에 충청도와 경기도등으로 재배가 급속히확산되면서 구례지역에서는 오이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생겨나고 있다. 충남도 농촌진흥원 柳暻東소득지도과장은 이같은 작목선정의혼란에 대해『정부가 작목선정을 주도하고는 있으나 재배에 실패한농가들이 발생할 경우 당국을 원망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권장을 하지못하고 있다』며『생산과정은 물론 유통구조를 근본 적으로 개선하고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인력을 농공단지에 취업시키는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농지값.임차료 하락=논농사 기피현상에 따라 농지소유 농민들은 전업을 위해 땅을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 않고 땅값이 떨어지는등 이중의 피해를 보고있다.
충남논산군의 경우 논값이 지난해 평당 2만원선이었으나 요즘 1만5천원으로 내렸고 밭값도 2만5천원에서 2만원선으로 떨어졌다. 영농수익이 떨어지면서 외지인 소유의 논과 밭에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휴경지가 늘고 농지임차료 역시크게 하락하고 있다.
경북안동지방에서는 농사를 남에게 맡길 경우 수익분의 30~40%를 농지소유자가 가졌으나 올해는 몫이 10%가량 적어진데다일부 과수원의 경우 수익의 90%를 농사짓는 사람에게 준다고 해도 마땅한 사람이 나서지 않아 애를 먹고있다.
전남승주군해룡면에서는 지금까지 논 한마지기당 쌀 한가마이상을지주몫으로 계산했으나 올해는 겨우 한가마를 받을까말까 한데다 수리불안전답이나 저지대등은 6마지기당 4가마에 그치고있다.
승주군해룡면 신기영농회사대표 林承澤씨(39)는『대부분의 농민들이 남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하기때문에 임차료가크게 내려가고 있다』며『그나마 농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땅은 한마지기당 반가마니를 받거나 아예 무상으로 농사 를 짓도록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영농회사 부실화=정부의 권장에 따라 대형 농기계를 보유한 위탁영농회사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으나 농사철이 지나면 값비싼 기계를 놀리고 있어 수익이 낮은 실정이다.
경남진양군의 경우 군내 4개 위탁영농회사를 대상으로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순이익은 회사당 5백87만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적 지원 절실 진양군 지수위탁영농회사(대표 李在錫)는 트랙터와 콤바인.이앙기등 2억여원대의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파종에서 수확까지 전과정을 위탁받은 면적이 3천평에 불과하고 10만여평은 부분 위탁받아 농사를 지었다. 이때문에 이 회사의 연간 수익은 3천만원에 그치고 있으며 사원들 대부분이 부업을 갖고 있다.
충남도 농촌진흥원에 따르면 충남도내 36개 위탁영농회사를 대상으로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 92년에는 평균소득이 4천6백42만원이었으나 지난해는 2천5백20만원으로 줄었다.
이때문에 10여개의 회사는 경영위기를 넘기기위해 시설채소에 손을 대는가 하면 농산물 가공공장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농촌진흥원의 관계자는 이에대해『위탁영농회사의 경영악화를 막기위해서는 정부가 신용대출규모 확대로 자금지원을 늘려주고 추곡수매량을 우선 배정해 주는등의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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