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압감 느꼈던 한국의 무슬림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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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26면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이 8월 28일 50여 일 만에 매듭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결코 짧지 않았던 억류기간 동안 우리 국민의 여론은 양분됐다. 그렇지만 탈레반에 의해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도 더 이상의 피해를 용인할 수 없다는 데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교단은 납치 초기부터 무슬림으로서의 강한 의무감과 함께 피랍자들이 무사히 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슬람 세계와 각종 언론들을 통해 호소문을 발표하고 탈레반에게 무슬림으로서 이슬람의 참모습을 보여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무슬림들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은 무덥고 지루했던 늦장마만큼 갑갑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지속되면서 피랍자 가족들이 느끼는 초조감만큼이나 한국 무슬림들에게 주어진 중압감도 더해만 갔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 일부 과격주의자들은 우리 무슬림들에게 협박전화를 했고, 급기야 경찰이 이슬람 성원을 지키기도 했다.

교단은 민간 차원에서 무슬림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무슬림 사절단 4명을 구성해 아프가니스탄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을 8월 23일~9월 1일 방문, 이슬람 지도자들과 선교단체들을 만나 한국 무슬림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번 인질사태로 인해 한국 이슬람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탈레반의 조기 인질 석방이 한국의 이슬람 발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무슬림 형제애와 인류애에 입각해 간절히 호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호소는 파키스탄의 언론을 통해 순식간에 내외로 전달됐다. 사절단은 탈레반 고위 관계자와의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현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 무슬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조기 석방 한 가지뿐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풍습에 비유해 귀한 손님들에게는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구촌 시대를 맞은 오늘날 무모한 의지와 용기만 갖고 나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참다운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의 종교가 소중하면 상대방의 종교도 소중하다고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생명은 종교와 인종,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다. 두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이번 인질사건을 우리는 이슬람과 무슬림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 탈레반의 비뚤어진 행위가 이슬람을 대신할 수 없음은 물론 그것이 이슬람의 전부가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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