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YES, 혼인신고는 NO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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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09면

일러스트= 강일구

맞벌이 부부 이모(29·여)·정모(34)씨. 2년 동안 열애 끝에 지난해 성대한 결혼식을 했다.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결혼했다.

혹시 모를 이혼 대비하는 신세대 부부 는다

“결혼 후 1년쯤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연애를 꽤 오랫동안 했지만 아직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신혼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지 않습니까. 서로를 탐색하다 신뢰가 쌓이면 혼인신고를 할 겁니다”(이씨).

이 부부는 당분간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을 양가 부모님도 알고 있다. 자식들의 뜻을 존중해 준다고 한다.

이씨는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가 6개월 만에 성격 차이로 이혼하면서 위자료 3000만원을 받았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적에는 결혼한 흔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친구를 보고 ‘똑 소리 나는 신세대는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결혼식은 하되 상당 기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사실혼 부부들이 늘고 있다. 사실혼은 양측이 혼인할 의사가 일치해 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관계를 뜻한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동거 커플과 다르다.

중앙SUNDAY가 통계청의 2005년 혼인신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결혼 후 1년 이상 지나 신고한 부부가 전체의 25.6%를 차지했다. 3년 지난 뒤 신고한 사람이 4.5%였다.

사실혼 부부를 선호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이혼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결혼 사실이 호적에 나타나 있지 않으면 이혼하기가 수월하고 이혼하더라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7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 500명을 설문조사했더니 32.8%가 ‘결혼할 배우자와 같이 살고 싶지만 꼭 혼인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김삼화 가정법률 전문 변호사는 “전업주부가 혼인신고를 안 하면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힘든데, 최근 5년 사이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혼인신고를 안 해도 카드를 만들 수 있고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혼 부부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결혼 후 10여 일 만에 폭행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탤런트 이민영씨와 이찬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탤런트 채림씨와 가수 이승환씨 커플도 3년간 사실혼 부부로 살다 이혼했다.

이혼한 사실혼 부부들이 재혼 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혼정보회사 ‘행복출발’에 따르면 사실혼 전력이 있는 회원은 2004년 전체 회원(3만여 명)의 2.9%에서 올해 8월 현재 4.1%로 늘었다.

사실혼 부부가 이혼한 뒤 처녀나 총각으로 속여 재혼했다가 들통 나는 경우도 있다. 김정민(29·여·가명)씨는 결혼을 한 뒤 재미 사업가인 남편을 따라 유학을 갔지만 3년 뒤 남편의 사실혼 전력을 알고서는 이혼을 요구했다.

사실혼 전력을 속이는 돌아온 처녀·총각 때문에 결혼정보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고객 10명 중 2~3명은 결혼식만 올리고 이혼했으니 미혼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사실혼 전력을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류창용 변호사는 “사실혼이 늘면 결혼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진다”면서 “우리나라의 공식 이혼율은 25%이지만 사실혼 부부의 이혼을 감안하면 30%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혼이란=법률혼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혼인신고를 정식으로 했다면 법률혼 관계가 성립한다. 사실혼이 인정되려면 두 가지 요건, 즉 혼인의사 합치와 동거 경력이 있어야 한다. 결혼식 혼인서약이 혼인의사 합치의 대표적인 예다. 동거 커플은 혼인의사 합치 요건에 맞지 않아 사실혼과 구분된다. 사실혼 부부가 이혼하면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동거 커플은 이런 권리가 없다. 사실혼은 상속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간통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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