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불교계 개혁 이렇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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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찌든 틀을 과감히 깨라”/종회는 세속 정치행태 모방하면 안돼/총무원 중심제 「교구 본산제」로 바꿔야/승풍진작 위한 “깨달음의 사회화” 필요
한국불교가 최근의 조계종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좋은 시절인연을 만났다. 이제 조계종단 사부대중은 지난날의 찌든 과구(새둥지와 절구·형식·틀)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승단 기강과 신앙풍토를 일대 쇄신하는 「개혁」의 물꼬를 터야 한다. 불교는 그 유구한 전래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하나의 민족종교로 뿌리를 내렸다. 불교가 민족문화 형성과 국민 심성순화에 기여해온 지난날의 영광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조계종의 개혁불사가 이러한 영광을 되찾는 바람직한 혁신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사부대중 좌담을 마련해봤다.<편집자주>
□참석자명단
▲석지오스님 청계사 주지·철박
▲정병조 동국대 교수·인도철학
▲남지심작가·「우리는 선우」 공동대표
▲사회=이은윤 본지 편집국장 대우
▲이은윤 편집국장대우=조계종 사태는 불교계가 안고 있는 비리와 왜곡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권위주의·군사문화로 왜곡 굴절된 우리 사회의 한 당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조계종 개혁회의가 발족되고 불교가 새롭게 태어나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개혁의 초점은 승풍진작·제도혁신·깨침의 사회환원·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에 따른 법맥정리 등으로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석지오스님=승풍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방면으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권력이 지나치게 중앙에 집중된 현 종단체제를 개선하고,주지나 종권을 쥔 사람이 아니면 무시하는 일반인들의 시각도 바뀌어야겠지요. 과거 청담스님께서 대처승 정화작업을 벌인뒤 2단계로 내부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됐었습니다.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배경에 제2정화대상이 되어야 할 집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병조교수=개혁의 방향은 먼저 기본원칙을 정해야 하는데 절대로 혁명적인 방법만은 피해야 하고 점진적인 개선이 돼야 합니다. 두번째는 전불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예컨대 공청회같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남지심씨=개혁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고,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입니다. 종단을 살린다는 믿음으로 모든 불자가 진지하게 고통을 찾아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다함께 개혁의 주체라는 의식을 가질 때입니다.
▲이 국장=사부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점진적인 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점진적인 개혁이 기득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폭력만은 철저히 배제되어야지요. 이제 모든 사태의 핵심 원인인 승풍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지오스님=승풍은 종단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스님들이 돌아다니다가 가까운 절을 찾아 하룻밤 묵으려해도 옛날과는 달리 그 절에서 달가워하지 않아요.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사찰재정을 스님들이 관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군요.
▲정 교수=승풍 진작을 위해서는 깨달음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져야 합니다. 깨달음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할까요. 옛날에는 스님이 엘리트여서 그런 분이 산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반인들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불교가 과거에 누리던 그런 영광이 대부분 세속사회로 돌아가 지식은 「대학의 몫」이 됐지요.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의 문제에서 떠나 우선 깨달음을 중생으로 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씨=신도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스님은 지극히 존경스런 대상이어야 합니다. 부처님도 탐·진·치에 묻혀있는 스님은 존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스님들은 내면의 정화를 위해 탐·진·치와 싸우는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 국장=구도정신의 모습,보다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인데 그것이 현실로 구체화되지 않고 내면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남씨=구도자는 일반의 윤리성을 훨씬 뛰어넘는 노력,사회까지도 정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만 종교와 사회가 공존할 수 있죠. 스님들이 세속법정에서 송사를 벌이는 것은 정말 꼴불견입니다. 개혁회의도 이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지오스님=불교의 이상과 승가 현실에는 괴리가 큽니다. 한국불교는 보수적이고 안일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번 조계종 사태에서도 젊은스님들이 나섰을 때는 회의적이다가 원로스님들이 개입하고서야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까.
▲이 국장=사회제도를 구체화하는 것,즉 회향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 불교의 맥인 대승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자기 깨침이나 사회제도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어떤 것이 이 사회에 보여주는 구체적인 제도행각이고 보살행이냐는 것입니다.
▲정 교수=깨달음의 사회화는 바로 청정성·도덕성·윤리성·의식개혁 등과 통합니다. 우리 불교계는 산중에서 신도를 기다리는 지금까지의 불교에서 「찾아나서는 불교」,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의 탈바꿈을 서둘러야 합니다. 불교가 양심을 지키는 도덕적 역할은 둘째 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쉼터의 역할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씨=흔히들 불교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고들 하지만 오늘날 서양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뿐이지 과거에는 시대상황에 맞게 훌륭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불교는 환경문제가 심각한 현 상황에서 자연이라는 엄청난 포교재산을 가진 셈이죠. 개혁종단에서도 관광자원을 어떻게 포교자원으로 활용하고 사회에 환원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또 연기관을 정립해 현대인들의 생활철학으로 바꿀 때 불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지오스님=사회복지활동도 물론 좋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산속에서 수행만 하는 것도 무소유정신의 실천이므로 포교활동이 됩니다. 스님들은 끊임없는 깨달음으로 불자들에게 삶의 가치와 빛을 일깨워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국장=동양에서는 원래 자연과의 융화·화합이 강조되었는데 그런 정신이 바로 불교의 생명 경외사상인 불살생과 통하지요. 그런 정신이 파괴되어 현재와 같은 환경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시대에 생명경외사상을 재해석하고 살리는 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총무원장의 권한·종회제도·사찰운영·승단제도 등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정 교수=총무원 중심의 현행 제도는 본산중심제로 바꾸는게 바람직합니다. 현재 총무원은 권한은 막강하나 재정자립도가 낮아 본산과 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총무원의 기능을 「본산 주지 연합회」 형식으로 축소하고,본산간에 마찰이 생기면 「장로회의」가 최종 해결을 맡도록 하면 됩니다.
▲지오스님=총무원에서 규정부를 완전히 독립시켜 기능을 강화하고 포교원의 역할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 국장=불교계가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현재대로 간다면 본산 중심으로 할 경우 본산 25군데에서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종회가 문제입니다. 세계 어느 종교단체를 보아도 이런 식의 의회제도는 없어요. 종교단체가 세속 정치제도를 모방해서야 되겠습니까. 법보다 앞서는 전통과 도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판승이다,사판승이다 말이 많은데 선교양종중에서 조계종이 아이덴티티를 어디에 두느냐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지오스님=선종의 전통이 워낙 뿌리깊어 20년동안 주지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선승이라고 우기는 마당에 이판승·사판승 가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이 듭니다.
▲정 교수=대한불교조계종은 선교융합을 표방한 선종이었는데 선일변도로 나간 것이 지금과 같은 문제를 불렀습니다. 선원과 강원을 별도로 운영하지 말고 같이 운영하고,개혁을 계기로 모든 사찰이 의무적으로 자기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국장=대승불교에서 사홍서원의 제1번이 중생제도고 마지막 4번이 불도를 이루는 것인데 4번부터 앞세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을 통한 깨침을 이루었다해도 선의 바탕으로나 포교를 위해서나 교가 확고해야 합니다. 불교를 마치 국교인양 생각하고 정부의 혜택을 받으려다 사회권력을 교계로 끌어들인 일부 스님들도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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