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사회봉사명령=이번에 정 회장에게 내려진 사회봉사명령은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특이하다. 대법원 예규는 사회봉사명령의 형태로 복지시설 봉사, 공공시설 봉사, 자연보호 활동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에게 내려진 사회봉사명령은 재판에서 약속했던 사회공헌기금을 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돈을 내라는 사회봉사명령은 전례가 없었다. 이에 대해 이재홍 부장판사는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봉사활동 기간도 정하지 않았다. 통상 사회봉사명령은 형사소송 규칙상 500시간 이내에서 구체적인 시간을 정해준다.
하지만 사회봉사명령을 통해 사회공헌기금 납부를 이행토록 한 것은 상당한 강제력을 갖게 된다. 정 회장은 적어도 5년간의 집행유예 기간엔 사회봉사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집행유예 기간 중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7년간 매년 1200억원씩 8400억원을 사회공헌에 써야 한다. 현대차는 사회공헌을 처음 발표할 때 글로비스 주식의 당시 가치로 따져 1조원을 내겠다고 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서 8400억원으로 조정됐다. 당초 현대차는 계열사인 글로비스 주식을 내겠다고 했지만 정 회장이 개인 사재를 출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비스는 독일 빌헬름사와 공동 소유하고 있어 현대차 마음대로 처분을 못하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비난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도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6일 논평을 내고 "규모가 큰 재벌 총수일수록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사회봉사명령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돈으로 처벌을 피하거나 감면받을 수 있는 길을 법원이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끼리 판결 엇갈려=농협을 정부 관리 기업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서울고법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정몽구 회장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는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정대근 농협 회장에게 3억원을 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농협은 정부 관리 기업체로 볼 수 없으므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고, 따라서 김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도 무죄라는 것이다.
이는 7월 같은 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윤재윤)가 정대근 회장에게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를 인정해 실형(징역 5년)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박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