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야당 후보까지 고소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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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상에 다루기 힘든 것이 막가자는 사람이다. 예의염치를 버리고 나면 대화가 어려워진다.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그렇게 나가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이 정말 그런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철학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상식적 공감대는 있는 법이다. 최소한도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통합신당이나 민주당마저 비판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숙고하는 게 옳은 태도다.

청와대는 오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이재오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고 한다. 국정원·국세청의 ‘이명박 죽이기’ 공작정치가 진행되고 있고, 그 배후에 권력 핵심이 있다고 지목한 데 대해서다. 사실 과거 어떤 야당 후보 치고 이 정도 의혹도 제기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군사정부도 야당 후보의 의혹 제기를 사법적으로 대응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유신 말기 야당 총재의 자격을 정지시켜 부마(釜馬) 항쟁과 정권의 종말을 부른 적이 있지만 그것도 야당 정치인을 앞세운 우회 공작이었다.

또 그런 의심을 살 여지가 정말 없었는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세청이나 국정원의 조사는 당연한 책무고 정상적인 업무”라며 “거짓과 술수로 승리하려는 선거 풍토를 바로잡겠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무슨 비리 정보를 입수했기에 갑자기 야당 후보와 야당 간부들을 한꺼번에 조사하며, 아직도 정치인을 뒷조사하는 게 국정원의 ‘정상적인 업무’란 말인가. 그렇게 뒤져 확인한 게 있다면 당당히 공개하라. 아무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의 재앙”이라고 청와대 브리핑에 올리는 것이 최고 권부가 할 일인가.

이제 대선이 겨우 3개월 남았다. 중앙선관위의 경고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할 모양이다.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오죽하면 범여권의 후보들마저 선거에서 손을 떼라고 하겠는가.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자중하기를 간곡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