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할 수 있다] 2. "돈 주려면 주총 승인 받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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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정치자금 지원은 현재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보듯이 종종 불법이나 부패에 연루되곤 한다.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가 이처럼 검은 거래로 이어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에게서 얼마를 받았고 어디에 그 돈을 사용했는지를 제도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불법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정치자금의 출납내역과 관련 영수증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러한 회계보고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검은돈의 정치권 유입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정치자금 조사를 위한 국내 계좌 추적권을 부여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편 정치자금이 부실기업 지원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일본에서처럼 적자를 냈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를 더욱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이나 단체가 개별 정치인이나 후원회에 직접 기부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자금에 관한 한 기업인들도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과거 세풍(稅風)이나 최근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드러났듯 정치권의 압력이나 혹은 후환이 두려워 원치 않지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정치권이 법정 선거 비용을 무시하는 상황이라면 기업들만 적법한 범위 내에서의 기부를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법의 굴레에 함께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후보가 법정 선거 비용을 초과 지출한 것으로 드러나면 당선되더라도 이를 무효화하고 향후 10년간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제재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이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마련도 필요하다. 영국은 주주총회에서 기업의 정치자금 규모를 4년마다 승인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기업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강원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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