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들 「양심의 편지쓰기」 화제/유한공 최해규선생님 “참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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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누구나 저지를수 있는 작은 잘못 “참회”/사연 접한 피해자가 더 감동… 2중효과
서울 노량진경찰서 이광웅서장은 최근 뜻밖의 편지 2통을 받았다.
인근 유한공고 2년생 학생 둘이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보낸 사연은 누구나 한번쯤 무심코 저질렀음직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내용.
­지난해 12월 시내버스를 타면서 승객이 많아 혼잡한 틈을 이용해 승차권을 내지 않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타는 등 두번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얼마전 집앞 골목에서 길에 떨어진 1천원을 주워 쓴 적이 있습니다.
이들 학생들의 이같은 「양심의 편지쓰기 운동」은 이 학교 윤리주임 최해규교사(55·국사담당)의 훈도에서 비롯됐다.
『중학교 1학년때 수필을 한편씩 써오라는 숙제때문에 밤새 고민하다 학생잡지 문예란에 실린 남의 글을 베껴 낸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글이 교지에 실리고 상까지 받았습니다. 용기가 없어 차마 사실대로 말을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양심에 거리낍니다.』
근엄한 훈계대신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보인 스승의 솔선수범 참회는 어린 제자들의 가슴에 기대밖의 큰 파문으로 확산됐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 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당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제가 맡은 2학년학생 3백20명중 3분의 1에 가까운 학생들이 편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나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4월초 학생들의 편지가 띄워진 며칠후부터 학교 우편함에 갑자기 우편물이 늘기 시작했다. 「양심의 편지」를 받은 버스회사 사장·경찰서장 등이 보내온 격려의 답장이었다.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반성할 수 있는 용기에 감명을 받았다. 앞으로도 늘 그런 용기를 간직해 달라.』
이 학교 사제가 엮어낸 작은 이야기는 「스승이 있어서 제자가 있고 한사람의 작은 참회가 여러사람의 큰 참회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웅변해 보인다.
최 교사는 구한말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선생의 고종손이기도 하다.<예영준·주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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