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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한국고전번역원을 '인문학의 카이스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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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일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왼쪽으로부터 전문위원 박헌순, 기획실장 이규옥, 편찬실장 백한기, 국역실장 김성애, 국역연구소장 서정문. 유능한 번역 상근연구원을 확보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 ‘한국학계의 독립운동가들’.

지난주 수요일(8월 29일) 자하문 밖에서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라는 국학 기관을 해산시키는 마지막 이사회가 열렸다. 조순.박석무.이웅근.임형택.이동환 등 대부분의 이사진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나라 한학의 거두이신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께서 이사장으로서 기나긴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연설을 했다.

"지난 43년 동안 박봉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묵묵히 번역 사업에만 몰두하여 빛나는 성과를 내주신 직원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도 앞서지만 민족문화추진회라는 간판을 내리게 되는 이 순간, 섭섭한 느낌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민족문화추진회는 민족문화를 선양한다는 명목으로 월탄 박종화, 두계 이병도, 외솔 최현배 등 당대의 국학계 원로들이 참가하여 1965년 11월에 출범한 민간단체이지만 그 주요 업무 내용은 한국 고전의 국역 사업이었다. 해방 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한학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학벌이 없는 까닭으로 학계에 편입이 되지 못했고, 그들의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퇴계.율곡학파의 적통을 이은 대학자들이 세인의 무지 속에 농사만 짓고 있거나 관계 기관에서 잡스러운 필경(筆耕)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그 나름대로 안정을 취하게 되자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새로운 통치 국면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민족문화추진회가 결성되자, 이곳은 명멸해 가던 우리나라 한학자 학맥의 집결지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관을 추진시켜 나간 힘은 군사독재정권의 문화적 안목에서 온 것은 아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의한 민족문화추진의 활기찬 실상이 경쟁심리를 촉발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된 4대 사고 중의 하나인 무주 적상산(赤裳山)사고의 실록은 창경원 장서각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6.25때 퇴각하면서 책임을 맡은 관리들이 이 실록을 부산으로 소개(疏開)하지 못하자, 폭격으로 소실되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이 적상산실록은 인민군에 의하여 북한으로 고스란히 이장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50년대 이미 태조부터 세조까지 실록에 나오는 모든 용어의 용례를 정리하는 기초사업을 완성하여 실록국역사업의 기반을 닦았다. 60년대 초부터 실록국역사업에 착수하였는데 그것을 총지휘한 사람이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최고의 엘리트들을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로 보내어 번역 사업에 종사케 하였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남한의 국학 연구는 너무도 초라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나라에 다산 정약용에 관한 학위논문은 수백 편이 넘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다산전집인 '여유당전서'는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논문 쓰기는 쉽고 번역은 어렵기 때문이다. 논문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만 번역은 한 줄 한 줄 모조리 그 뜻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대접을 해주는데 번역은 얕잡아 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인문학은 기초 없는 사상누각이요, 정직함이 결여된 위선의 허구다. 나는 도쿄(東京)대학 유학 시절 정통 한학의 수련을 쌓으면서 우리나라 학문의 위선을 통렬히 반성했고, 하버드대학의 고전학 박사학위 논문의 태반이 고전 번역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우리 고전 국역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82년 귀국하면서 곧바로 새로운 한문해석학적 동양학 방법론을 절규하였고, 그때 나의 의식 속에 부상한 우리나라 최고의 국학기관이 바로 민족문화추진회였다.

43년 동안 1034책의 방대한 서물을 번역해내었고, '한국문집총간' 본집 350책을 완간했다. 43년 동안 이 국학기관에 투여된 돈은 500억원 정도에 머문다. 그러나 이 번역서로 인한 부가가치는 돈으로 셀 수가 없다.

'연산군일기' 한 줄의 해석에서 생겨난 '왕의 남자'가 400억원을 넘게 벌었고, '중종실록'에서 힌트를 얻은 '대장금'의 부수 효과는 천문학적 숫자다. 이제 우리가 신흥대국 중국과 경쟁해가는 소프트웨어의 핵에 국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민족문화추진회는 이제 민간단체로서 그 간판을 내리고 정부출연특별법인인 한국고전번역원으로서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이 변화의 절기에 나는 교육부 등 관계 기관에 간곡히 호소한다.

첫째, 번역에 종사하는 기존 일꾼들에 대한 대우를 파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민추의 직원들은 수준 이하의 박봉에 시달려 왔다. 새 기관이 인문학의 카이스트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만 새로운 한학의 부흥시대가 열린다.

둘째, 한학자들의 모임인 번역원의 내재적 리듬을 중시하고 공공기관의 일반적 잣대로써 허식적 변화를 강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셋째, 번역원 원장을 한학의 전문성이 있는 창조적 인물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 관료주의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넷째, 이사회가 해체되었으므로 설립준비위원회의 활동이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이 기관의 바른 진로에서 해소될 수 있다고 나 도올은 굳게 믿는다.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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