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0년 만에 무파업 타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대자동차 노사가 임금.단체협상에 잠정 합의했다. 임단협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해오던 현대차노조가 무파업으로 잠정 타결에까지 이르기는 1997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회사 측이 파업을 막기 위해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항까지 일부 합의해 줌으로써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 노사는 4일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열린 12차 본교섭에서 ▶임금 8만4000원(기본급 기준 5.8%) 인상 ▶상여금 750%(50%포인트 인상) ▶무상주 30주 지급 ▶정년 59세로 1년 연장(임금은 동결) ▶신차종 생산 시 고용과 관련된 사항은 노사 공동 심의.의결 등 146가지에 모두 합의했다.

<관계기사 6면>

윤여철 현대자동차 사장은 "10년 만의 무분규를 달성, 노사 간 공존공생의 새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상욱 현대차노조위원장도 "회사 측의 협조로 원만한 타결을 이뤄냈다. 노사 간 신뢰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울산시민과 조합원의 뜻을 받들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현대차노조는 87년 창립된 이래 94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 올 상반기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20년째 줄파업을 해왔으며, 임단협과 관련해서는 94~97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무파업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회사 측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협상 결렬로 21일간 파업해 1조2958억원(자동차 9만3882대)의 생산손실을 봤다. 올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정치파업까지 모두 합치면 1년에 가까운 총 349일간을 파업하며 10조9422억원(107만5333대)의 생산손실을 입혔다.

또 민주노총 전위부대 역할을 해온 현대차노조가 매년 되풀이해 오던 '협상-결렬-파업-타결'의 고질적 협상패턴을 끊는 계기를 마련함에 따라 국내 노동계 판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시민들의 압박도 크게 작용=현대차 노사를 무파업 타결로 이끈 데는 여론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24일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하자 울산지역 음식점 주인들과 개인택시 기사들이 "음식값을 10% 할인해주겠다" "현대차를 구입해주겠다" 며 무파업 타결을 촉구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 등에 "현대차를 사지 않겠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등 현대차 불매 운동의 조짐도 보였다.

이에 현대차노조는 협상 결렬 직후부터 이례적으로 휴일도 없이 실무협상에 매달렸고 파업을 가결시키고도 유보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회사 측도 파업이 마무리될 때쯤에나 내놨던 협상안을 미리 내놨다. 서로 비난만 해오던 노사 양측이 협상 테이블 안팎에서 "상대방이 진실성을 보인다"며 신뢰감을 보인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10년 만의 무분규 임단협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회사 측이 지불한 대가는 엄청나다.

임금 부분에서는 1차 협상안 때부터 기아.대우 등 이미 타결한 동종업체들보다 높은 수준을 제시, 노조원들까지 놀라게 했다. 또 경영권 침해 논란을 감수하며 신차 생산공장.생산량은 물론 해외 공장의 신.증설 및 생산.수출 결정도 노조와 공동으로 심의.의결하기로 했다.

울산상공회의소 이두철 회장은 "회사 측이 조기 타결을 위해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고질적 파업으로 인한 회사와 시민들의 피해를 감안할 때 무파업 타결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남은 절차=현대자동차 노사가 4일 합의한 올해 임단협 잠정 합의안은 6일 4만4000여 명의 현대자동차 노조원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찬반투표에 부쳐진다. 여기에서 재적인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을 경우 확정된다. 가결되면 회사 측 대표(윤여철 사장)와 노조 측 대표(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가 조인, 효력이 발효된다. 임금 부분은 1년 뒤, 단체협약 부분은 2년 뒤 재협상을 벌인다.

울산=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