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놔두고 왜 장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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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안여는 민자/“비준때 한번 매 맞으면 된다”/농어촌대책 나오는 6월까지 시간벌기
민주당이 9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규탄 장외투쟁에 나섬으로써 정치가 제 무대인 국회를 떠나 거리에서 방황하게 됐다. 강한 야당은 가두투쟁을 해야 한다는 과거의 도식에서 민주당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 역시 정치대화의 장인 국회를 여는데 소극적이다. 여야 모두 생산정치·대화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은 민주당의 「길거리 정치」에 대해 『구태의연한 작태』 『무책임한 선동』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주장대로 임시국회를 열어 야당을 장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상임위원회는 열 수 있다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야당이 문제삼고 있는 UR에 대해 민자당은 『정부에서 할 일은 다했다』는 입장이다.
이행계획서 수정문제로 김양배 농림수산부장관을 문책했고,이회창총리가 대국민사과를 한 것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락됐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대안없이 상투적인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자당은 민주당에 대해 『반대만 해서 어쩌자는 거냐』며 『이미 국제화와 개방화는 세계적인 대세』라고 설명한다.
민자당은 민주당이나 농민도 개방,즉 UR의 불가피성을 알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민주당이 정략적으로 농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농민은 또 UR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더 많은 지원 등을 위해 반대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민자당은 우선 홍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전국을 도는 순회강연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농어촌 종합대책이 나오는 6월정도까지 시간을 끌며 야당의 공세는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여 원내 토론 등을 UR 협정비준의 불가피성 등을 적극 홍보할 수 있는 국회 소집엔 소극적이다.
한 고위당국자는 『UR의 경우 비준동의때 맞을 것이 뻔한데 왜 지금 장을 열어줘 두번 매맞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내심을 털어놓고 있다.
이렇게 여당이 정치의 무대인 국회는 여는데 소극적이기 때문에 정치가 장외로 흘러가는 것이다.<김기봉기자>
◎거리로 나간 민주/UR 핑계로 정치공세 강화/농촌출신 많아 각계 의원들 이해도 일치
○…민주당이 국회라는 정치의 장을 마다하고 장외로 나섰다.
장외로 나선다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다시 되는 것도 아닌데 가두에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이러한 가두투쟁을 벌이는데는 단순히 UR문제를 풀겠다는 실질적인 목적보다는 이를 이용하여 정치공세를 높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더 깊게 깔려있다.
그 배경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지금의 시기에 정부·여당을 강하게 몰아붙여야 하며 UR협정의 국회비준을 저지할 힘을 장외에서 뒷받침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내에서 UR협정 비준거부 등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악재가 터져 나왔기 때문에 대여 유화론을 제기할 분위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거리로 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다른 악재들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UR문제와 관련한 강경대응은 당내부의 역학구조상으로도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역적으로 쌀농사가 많은 호남출신 의원들이 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내 지도자들의 정치적 계산이 일치한다는 점도 민주당이 거리정치로 나가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이기택대표는 이 기회에 정치의 주도권을 단숨에 야당으로 끌어오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차기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하고 있는 이 대표로서는 자신의 주도하에 강한 야당을 만들어야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김대중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자신의 유약한 이미지를 바꿔놓아야 할 절박한 사유가 있다.
즉 강한 야당을 하려면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고식적인 과거의 정치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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