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한국화 선각자 李應魯 5주기展-호암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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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89년1월 자신의 85회 생일을 이틀 앞두고 파리에서 갑작스레 타계한 顧菴 李應魯화백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5주기추모전이 열린다.
湖巖미술관이 1년여의 준비끝에 中央日報.KBS와 공동주최하는「고암 이응로전」이 29일~6월9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선보이게된 것이다.
호암갤러리는 고암의 마지막 초대전이 열렸던 장소.이곳에서 다시 개최되는 이번 추모전에는 그의 평생 반려이자 가장 강력한 예술적 지지자였던 부인 朴仁景씨가 소장해온 회화 30점.콜라주작업 30점.오브제작업 30점등 90점이 소개된다 .
이가운데 밥풀을 이겨 사람형상을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 군중의모습을 나타낸 『군상』연작,테라코타에 채색한 『콤퍼지션』등 오브제작업들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또 동백림사건,윤정희.백건우납치사건등에 얽혀고국과 등진채 외롭게 파리에서 40년을 보낸 고암의 일상생활과예술작업을 보여주는 사진자료 1백50점도 함께 소개될 예정이다.고암은 전통 東洋畵가 현대 한국抽象회화로 옮 겨가는 과정에서누구보다 많은 단서를 제공했던 작가.그러나 남북분단과 대립이라는 불행한 현대사속에서 사상시비에 휘말린채 최근까지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던 불운한 작가이기도 하다.
죽음이 뒤늦은 解禁을 불러올수 있었다고는 하나 그의 작품세계는 아직도 상당부분이 공백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인 朴씨가 소중히 보관해왔던 미공개작품들이공개됨으로써 그의 작품세계에 드리워져 있던 공백상태가 어느정도걷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는 민족적인 추상작업을 그려보이고 싶었다.』 그가 지난 76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과의 현지인터뷰에서 남긴 이 말은 사후에 民族작가로 기억되길 원했던 그의 심경과 예술세계의 목표를요약한 말이다.1904년 홍성태생인 고암은 20세때 당시 가장유명한 書畵家였던 海剛 金圭鎭의 제자로 들어가 전통 동양화를 익혔다.고암은 해강 문하에서 사군자와 전통산수화를,일본유학에서사생적 수묵풍경 등을 두루 수련한 뒤 한국전쟁직후부터 거친 破墨을 사용한 寫意的 표현으로 일관,추상세계로의 변화를 예감케하는 실험과정을 선보 였다.
1954년 홍익대 동양화과 주임교수 자리를 버리고 파리로 건너간 고암은 그때부터 새로운 추상작업을 시작했다.한지를 이용한콜라주작업과 기호화된 문자에 의한 구성적 추상을 거쳐 마지막으로 동양화정신의 기본인「書畵同論」으로 되돌아와 서예적 추상의 세계를 열어보였다.이러한 큰 변화속에서도 그는 판화.木彫.도자기.테라코타등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가며 현대미술의 실험정신을 한국화의 변용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펼쳐왔다.고암의 선각자적인 고민의 영향은 현대 한국화 작가들이 벌이는 추상작업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고암 예술세계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는 도록도 발간할 예정이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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