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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변신’ 선언 베니스영화제 “예술영화 짝사랑 접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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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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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영화 축제로 꼽히는 제64회 베니스영화제가 지난달 29일 개막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의 메인 극장인 살라 그랑데 앞에는 올해도 변함없이 베니스의 상징인 황금사자상이 전 세계의 영화 스타와 관객을 환영하고 있다. 전주 국제영화제 정수완 프로그래머가 올 베니스영화제의 현장 스케치를 보내왔다. 장편 경쟁부문에 한국 영화가 진출하지 못해 아쉬움은 남지만 지구촌 영화계의 오늘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올해에는 황금사자상 옆에 세워진 또 하나의 커다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부서진 벽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둥근 쇳덩어리 모양의 조형물이다. 커다란 이 쇳덩어리는 벽 위에 떨어진 폭탄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낡고 오랜 벽을 부수기 위해 만든 장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해 베니스가 지향하는 그 무엇인가를 웅변하는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2007 베니스영화제는 영국 조 라이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어톤먼트’로 시작했다. 중국 신인 감독 알렉시 탄의 데뷔작 ‘블러드 브라더즈’로 9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안 맥이완의 대서사 소설을 영화화한 ‘어톤먼트’와 우위썬(吳宇森) 감독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블러드 브라더즈’는 1930년대 영국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다.

 무엇보다 베니스의 ‘변신’이 주목된다. 신인 감독들의 대작 상업영화를 과감히 개·폐막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베니스의 개·폐막작은 거장들의 작가영화나 예술영화로 채워졌다. 예술영화·작가영화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주최 측의 의지로 판단된다.

 이런 변화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마르코 뮬러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는 “새롭고 혁신적인 영화 만들기가 언제나 저예산의 실험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올해 영화제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22편의 장편 경쟁작 가운데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이 연출하고, 스타들이 출연하는 미국 영화와 영국 영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발언이다.

 새로운 영화의 힘이 지역과 장르를 뛰어넘어 이루어진다는 점은 올 베니스의 특별기획전 ‘스파게티 웨스턴’에 그대로 반영됐다. 미국의 서부영화가 이탈리아로 건너와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재탄생했지만, 스파게티 웨스턴 안에는 미국의 서부영화만큼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의 영향이 자리잡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올 경쟁작 리스트에 스파게티 웨스턴을 다시 일본식으로 변형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가 들어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경쟁작 가운데 전쟁에 관한 영화가 많이 눈에 띄는 것도 둥근 쇠 조형물이 폭탄 같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5세의 이라크 소녀를 강간하고 그녀의 가족들을 몰살한 미군 병사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리댁티드’는 제목 그대로 무엇이 미군 병사들로 하여금 그렇게 잔인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느냐를 다양한 기록과 영상들의 편집(리댁트)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 이 영화 영상의 끔찍함이 이라크전의 종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감독의 의도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라크 참전에서 돌아온 후 실종된 미군 병사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폴 해기스 감독의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실종된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참전 병사들의 심리적인 고통과 아픔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도 미국 정부에 의해 전쟁터로 보내진 전쟁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설득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베니스는 영화적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동시대 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비경쟁 부문에,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가 새로운 경향의 영화를 소개하는 경쟁 부문 오리종티에 초청받았다.

정수완<전주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베니스영화제=1932년 시작된 세계 최고(最古)의 영화제. 예술영화·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87년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감독상·신인배우상(문소리)을, 2004년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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