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만복 국정원장의 어이없는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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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 원장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직접 간 것부터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김 원장이 방탄조끼를 입을 정도로 위험을 무릅썼다고 자랑했는데, 그 정도로 위험한 곳에서 행여 불상사라도 벌어졌다면 어쩔 작정이었는가. 음지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정원장의 안전을 되레 국민이 걱정해서야 말이 되는가.

 더 어이없는 것은 인질석방 후 김 원장과 국정원이 보여준 자화자찬 행각이다. 김 원장은 카불 현지에서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풀려난 인질들이 기자회견·사진촬영을 할 때도 사실상 자리를 함께했다. 국정원이 ‘김만복 원장 아프간서 인질협상 지휘’라는 홍보자료를 낸 것도 가관이다. 외교통상부 등을 제치고 인질 석방 공로를 독점하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엿보인다. 덕분에 한국은 테러조직과 정부 차원의 협상을 벌인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공인됐고, 거액의 몸값 의혹마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바보라서 정보기관 책임자의 움직임을 극비에 부치는 게 아니다. 지난 3월 방한한 마이클 헤이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벌어졌던 소동을 상기해 보라. 우리는 원장이 방탄복을 입고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국정원의 역량과 지휘체계가 엉망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납치사건이 다시 벌어지면 김 원장이 또 달려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