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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학 교수가 들려준 ‘부자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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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22면

일러스트=강일구

서울 시내엔 빌딩이 4만 개 있다. ‘그런데 왜 내건 한 채도 없을까?’ 펀드와 예금에 채워둔 돈이 10억원 넘는 현대판 만석꾼도 10만 명이다. ‘한데 그들은 어떻게 돈을 굴렸을까?’

그들을 알부자로 키운 건 ‘일’이었다

누구나 이런 의문을 한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돈이 ‘행복의 피라미드’ 꼭대기는 아닐지언정 하나의 주춧돌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장막 속에 가려져 있다. 그들의 재산 불리기 ‘레시피’가 궁금해도, 알려진 건 늘 손톱만큼이었다.

마침 ‘부자학회(學會)’가 탄생을 앞둬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부자의 비술도 한 꺼풀씩 벗겨질 수 있을까. 수천 명의 알부자를 연구해 오면서 학회 창립을 주도한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 교수를 만났다.

■절약과 인내가 부자 되는 첫걸음
“성북동 회장들 집에는 문패가 없어요.” 한 교수는 갑자기 문패론(論)을 꺼냈다. 그는 1년 반 전 종암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사했다. 대그룹 오너 자택이 수두룩한 부자 동네다. 그런데 눈에 띄었던 것 한 가지. 전 동네와 달리 문패가 없었다. “부자들의 속성인 두려움 때문이에요.”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으니 외부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얘기였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 교수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건 부자의 장점이기도 하단다. 통상 ‘나서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귀동냥을 많이 할수록 돈 되는 정보를 챙길 확률이 커지는 건 불문가지다.

지금처럼 ‘재테크 혁명기’를 맞은 때엔 더욱 그렇다. “요즘 부자들의 고민 1순위는 ‘말 갈아타기’입니다.” 재산 불리기의 주된 연장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겨가는 변곡점을 맞아 부자들도 어려운 선택과 시험대에 직면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부자들은 이런 줄타기를 즐긴다고 한다. ‘돈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못 되는 건 ‘베팅력의 법칙’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여윳돈 1억원을 가진 부자라면 수천만원을 우량주에 묻어둘 수 있다. 실패와 판단오차가 허용되는 ‘자유로운 돈’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신용융자로 ‘빚 투자’를 하기 일쑤다. 실패하면 내상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부자들에게 돈이 솟는 샘물은 무엇보다 ‘노력과 절약·인내’ 같은 평범한 덕목이에요.” 한 교수는 대학 졸업 뒤 회사원 생활을 하다 요식업 재력가가 된 박모 사장 사례를 들었다. 박씨는 일곱 번이나 식당을 바꿨다. 두 번은 거의 말아먹었다.

그러나 ‘최고는 결국 보상받는다’는 뚝심으로 부를 쥐었다. 자신의 식당에서 파는 6000원짜리 냉면에 1000원짜리 육수를 쓸 정도로 최고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맛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모든 육수를 그 자리에서 폐기 처분했다. ‘프로정신이 부자의 씨앗’이라는 절대명제를 새삼 확인해주는 일화다.

이런 얘기에 “그런 원론을 누가 모르느냐”고 애써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 교수는 “부자들은 매일매일 행동으로 옮겼다는 게 달랐다”고 강조했다. 그가 부자를 만나 조사했더니 부자 되는 데 가장 공헌한 요소는 비즈니스(60%)였다. 부를 축적하는 1등 공신은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돈을 지렛대 삼아 주식도 사고 부동산도 사서 굴린 것이다. 다음은 절약(25%)·정보(7%)·인맥(4%)·출생(2%)·결혼(1%)·행운(1%) 순이었다.

■절대 금액으로 부자 따질 순 없어

그렇다면 돈이 얼마나 많아야 부자일까. 최근 한길리서치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부동산·금융 자산 등이 27억원은 있어야 부자”라는 응답이 많았다. 2004년에 ‘10억 만들기’ 열풍이 불었으니, 3년간 꼭 세 배로 뛴 셈이다. 그런데 한 교수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정의했다. 절대 숫자로 부자를 따질 순 없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엔 자신이 부자인지, 부자 소리를 들으려면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지 잴 만한 변변한 모델이 없다. 미국엔 '이웃집 백만장자'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토머스 스탠리 박사의 ‘기대재산 방정식’이란 게 있다. ‘평균적 재산=나이×상속재산을 뺀 총 연소득÷10’으로 규정하고, 재산이 이 수치의 3배가 되면 부자라는 것이다.

사실 한 교수가 부자학에 눈뜬 것도 1986년 유학 시절 스탠리 박사의 강의를 접하고 나서다. “그런데 막상 귀국해보니 아는 건 물건 파는 법을 다룬 ‘부자 마케팅’밖에 없었어요. 아마존 사이트에서 책을 사서 부자와 관련한 재무학 책을 사서 독학으로 파고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부자를 만나긴 쉽지 않았다. 아파트 부녀회에 가고, 강남 부자를 만나려 유명한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고, 때론 증권사 투자설명회를 쫓아다니며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그리고 2004년부턴 서울여대에서 ‘부자학개론’ 강의를 열었다. 이 강의는 서울여대에서 학기마다 350명 정원이 꽉 차는 몇 안 되는 과목 중 하나다.

“그런데 부자를 연구하려면 경영학·경제학만으론 모자라요. 학문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심리학·철학·역사학까지 필요하지요.” 교수·전문가들로 ‘부자학연구학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9월 17일 열릴 학회 창립식엔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 자유기업원 김정호 박사, 하나대투증권 김영익 부사장, KTB자산운용 장인환 대표 등 이름 높은 전문가 100여 명이 함께한다. 학회에선 부자학을 이론화하고, 존경받는 부자상을 정립하며, 올바르게 부자 되는 법을 확산시키는 일을 주로 할 계획이다.

■부자가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국

“장차 ‘죽음 전문가’도 모시려고 합니다.” 섬뜩하게 웬 죽음 얘기냐고 물었다. 그는 돈암동 한의원 부자 얘기를 했다. 수백억원대 재산이 있는 한 부자가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을 불렀다. 그는 “외상 장부를 갖고 오라”고 했다. 그러곤 다 불태웠다. 한의원 평판은 동네에서 상한가로 치솟았다. 또 다른 부의 씨를 뿌리고 간 것이다.

한 교수는 “먹을 만큼 먹고 나누면 다른 사람들이 지켜준다”고 했다. ‘부의 근원은 내가 만든 것을 탐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 원리를 알아야 좋은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존경받는 부자’를 화두로 꺼냈다. 그가 만난 김모 사장은 ‘점포 넘기기’로 부자가 됐다고 한다. 예컨대 수퍼마켓을 차려 처음에 할인판매로 손님이 북적이게 해 착시현상을 일으킨 뒤 급매로 내놓아 높은 값에 팔기를 되풀이해 떼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렇게 돈을 번 부자는 남들의 눈총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고, 그래서 행복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선 4대는 이어져야 부자 가문으로 친다”고 했다. 재산을 불리되, 대대로 음덕(陰德)을 쌓아야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물론 부자를 고깝게 여기는 풍토도 문제라고 본다. 그는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국가적 부를 창출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고, 그렇다 보니 부자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회 활동에 ‘반(反)부자 정서’를 완화한다는 목표도 넣었다. “‘건강한 부자’를 많이 만들려면 제도적 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내년도 세제개편안에서 정부가 기부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늘리기로 한 것처럼 부자와 사회가 교감하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마칠 즈음 한 교수가 “알부자들을 만나면서 절감한 게 있다”고 귀띔했다. “학벌은 부자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좋은 학교를 나오면 부자 되는 데 방해가 된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한 부자는 그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사법시험에 세 번 떨어지고 사업을 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학력이었다고. 음식점 주인이 머리를 못 숙이면 장사 공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교수는 “무엇보다 부자 되는 길은 수백~수천 갈래고,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는 대학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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