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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영화제 非경쟁으로해야 성공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내년 11월 서울국제영화제(가칭)개최가 확정됨에 따라 이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화체육부는 지난 25일 국제영화제 개최 방침을 확정짓고 이미 준비위원회 구성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국제영화제는 우리나라에선 처음 열리는 국제영화제인만큼 영화 관계자뿐만 아니라 영화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데현재로선 개최 방침만 확정됐을뿐 경쟁.비경쟁 여부,매년 개최인지 혹은 격년 개최인지 여부,필름 마킷(견본시장 )의 포함 여부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선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
이중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경쟁영화제로 하느냐,아니면 비경쟁영화제로 하느냐의 문제다.
흔히 영화제 하면 경쟁영화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국제영화제중에는 비경쟁영화제도 적지않다.뉴욕영화제.홍콩영화제.밴쿠버영화제등은 처음부터 비경쟁영화제로 출발해 국제무대에서 성공한 영화제로꼽히는 행사들이다.
서울국제영화제는 일단 비경쟁으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견해가 현재로는 지배적이다.이는 무엇보다 동양권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중 경쟁영화제로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현실적이유 때문이다.
85년「동양의 칸영화제」를 겨냥하고 출범한 동경국제영화제가 9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무대에서 별로 자리를 잡지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입증해준다.
소니.마쓰시타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동경영화제는 좋은 작품들을 유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관객들의 관심을끌어당기는데도 실패,올해는 아예 개최장소를 교토로 옮길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경영화제는 수준높은 영화제가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란것을 보여주고 있다.동경영화제는 한때 10억엔(약 80억원)에이르는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우수작 유치에 실패했다.
이는 서구 중심으로 편제된 세계영화계의 「높은 벽」을 넘지못했기 때문이다.
칸.베네치아영화제등 A급으로 분류되는 영화제들은 다른 영화제에 출품된 적이 있는 영화들은 관행상 심사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결국 이런 영화제를 겨냥하고 만든 영화들은 동경영화제처럼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나서는 것을 꺼리게 된다.
즉 미국이나 유럽지역 유수감독들의 좋은 영화가 아시아지역 영화제에 출품될 경우 다른 유명 영화제에서의 수상 가능성을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감독들이 그것을 무릅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할리우드영화 일방의 압도적인 영향력하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에게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로 국제영화제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비경쟁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비경쟁으로 운영하면 작품을 유치하는데 그만큼 선택의 폭이넓어지므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선보일 수 있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는 국내 직배사들을 통해 미국과 거의 동시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나라 영화는 수입가 책정등에서 혼선을 많이 빚고 있는데다 그나마 수입후에도 극장을 못잡아 창고에서 썩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영화제를 일종의「견본시장」으로 활용하면 최근들어 더욱 현실화되고 있는 마구잡이식 외화 수입 행태를 개선하는데도 기여하리라는 것이다.
매년 4월 열리는 홍콩영화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홍콩 영화관객들에게 세계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게 해주는 유익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런 행사들이 오히려 처음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우리에겐 유명 영화제보다 더욱 참고가 되리라는 지적이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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