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육상聯 잣대는 고무줄인가-동아마라톤 是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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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번 신용을 잃은 사람이 다시 신용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이번만은 정말이니 믿어달라』고 했을때 액면 그대로 믿어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동아국제마라톤대회의 거리 시비를 일으킨 대한육상경기연맹이 꼭그 상황에 빠져있다.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해보자.
5㎞ 랩타임이 14분7초라는「믿기어려운 기록」이 나오자 처음에는 트랙을 한바퀴 덜 돈게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으나 필름확인결과 트랙은 제대로 돈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5㎞구간의 실제거리가 짧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고 육상연맹의 모 간부가『출발선이 잘못된 것같다』고 말함에 따라 출발선이 2백50m정도 앞당겨졌다는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대회 다음날인 21일에는 육상연맹측이 자동차로 10㎞까지 검측한 후『5㎞ 지점표시가 1백m정도 앞당겨져 있었으나 5~10㎞구간에서 보충됐으므로 전체거리에는 상관없다』는 어설픈 해명을내놓았다.
의혹이 점차 커지자 연맹측은 23일 전체거리에 대한 재실측에나섰고 그 결과『5㎞마다 표시된 지점이 모조리 잘못됐다』며『그러나 전체 거리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재실측 결과가 나옴에 따라 거리 시비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육상연맹 간부들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지점표시가「모조리」틀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전체거리는 한치의 오차도 없으니 무조건 믿어달라」고 하는 것은 신뢰도의 문제다.
육상연맹이 일단 신용을 잃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명색이 국제대회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초청한 대회에서 거리가 짧았느니 맞았느니 하면서 시비가 일었다는 사실자체는 이미 한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니 만큼 육상연맹측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육상연맹은 지 난 80년 서울에서 벌어진 국제여자마라톤대회에서도 골인지점을 잘못 인도하는바람에 전체기록이 모두 무효되는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국제대회를 치르는 것은 그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것이고 권위있는 대회일수록 거액의 참가비를 주지않더라도 실력있는 선수들이 다투어 참가하게 마련이다.
올림픽까지 치른 한국이 자꾸 이런식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2등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더이상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제대회에 유명선수들의 참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孫長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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