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순 청장, 여론에 밀려 경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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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해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임을 요구했던 황운하 총경이 29일 경찰청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뒤 전화통화를 하며 청사를 떠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경찰이 29일 이택순(55) 경찰청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한 황운하(44.총경)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에 대해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당초 이 청장이 징계위에 요구한 중징계(정직.해임.파면)보다는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이 청장은 징계위원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결재했다. 경찰 안팎에선 이 청장이 '보복 징계'에 대한 내부 반발과 국민의 따가운 비판 여론에 떠밀려 징계 수위를 낮췄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경찰청은 29일 오후 중앙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위원 만장일치로 황 총경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리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남형수 경찰청 감사관은 "징계위원들은 황 총경이 조직의 수장을 저속한 표현으로 비난하고 언론에서 이를 인용해 '하극상' 등 내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도해 조직의 위신을 추락시킨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황 총경은 5월 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 폭행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 게시판에 "경찰청장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조직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김정식 정보국장(치안감)과 경무관급 경찰 간부를 포함한 총 5명으로 구성된 징계위원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황 총경의 소명을 들은 뒤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황 총경은 "'청장 퇴진' 주장은 복무 규율을 어긴 것"이라는 위원들에게 맞서 "표현의 자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징계를 통보한 직후 황 총경은 "건강한 내부 비판이 징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며 "징계의 경중과 관계 없이 소청.소송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고 주장했다. 감봉 조치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민사소송도 병행키로 했다.

◆상처만 남은 징계 파동=이 청장은 황 총경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실제 징계는 감봉에 그쳤다. 남 감사관은 "징계위는 황 총경의 행위가 정직 대상으로 봤으나 과거 훈장을 받는 등 그간 공적과 포상 실적을 감안해 수위를 한 단계 낮췄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경찰 사이버 게시판에는 하위직 경찰들이 '청장 퇴진'을 공공연히 요구하는 등 지휘권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이번 징계 결과에 대해서도 경찰 내부에서는 황 총경의 '승리'로 여기는 반응이 많았다. 이 때문에 수뇌부가 징계의 명분으로 삼았던 '조직 기강의 확립'은 오히려 후퇴한 형국이다.

황 총경을 포함한 경찰 구성원들도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명령 계통이 명확한 계급사회에서 상급자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 의사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실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경찰 중견간부는 "이번 사태가 경징계로 무마되기는 했지만 경찰 조직 안팎에서 후유증은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전.현직 경찰 몸싸움도=이에 앞서 오후 3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선 50~60대의 퇴직 경찰관들로 구성된 무궁화클럽 소속 시위대가 20~30대 후배 경찰관에 둘러싸였다. 시위대는 '이택순 청장은 퇴진하라','황운하 총경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라'고 외쳤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 선후배끼리 멱살잡이까지 오갔다.

무궁화클럽은 전.현직 경찰관 1만7000여 명이 가입한 경찰 모임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허위 증언한 이 청장의 비도덕적 행위가 국민과 부하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징계가 결정될 경우 경찰은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이며 자정 능력을 잃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이들은 국가인권위를 방문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 이 청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 징계=경찰공무원 징계령에 따르면 경찰 징계는 중징계(파면.해임.정직)와 경징계(감봉.견책)로 나뉜다. 징계위원회 위원은 징계심의 대상자보다 상위 계급인 7인 이하의 경찰로 구성된다.

천인성.강인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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