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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불황의 가요계에 희망 심은 가수 이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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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그윽할까. 가사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사랑 노래가 있다. 가수 이적(사진)의 ‘다행이다’란 노래다.

 이 노래는 이적이 미국 유학 중인 애인에게 바친 곡이다. 자신을 변화시킨 사랑이라는 ‘기적’을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 사례와 진솔한 어법으로 읊어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랑 노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듯하다.

 “거친 바람 속에도/젖은 지붕 밑에도/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 걸….”

 좋은 연애편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남용하지 않는다. 감정의 과잉도, 닳아빠진 기교도 없다. 진실된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해 내는 진정성만이 있을 뿐이다. ‘다행이다’는 고수가 쓰는 연애편지 같은 노래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가사와 투박하리 만큼 담백한 창법은 기계적으로 울부짖는 소몰이 창법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 준다.

 그런 진정성이야말로 이적을 우리 시대의 대표 아티스트로 만드는 힘이다. 어느 중견 가수는 그에 대해 “솔직한 노래를 정말 솔직하게 부르는 가수”라고 평가했다.

 이적은 최근 소극장 앙코르 공연을 성황리에 끝냈다. 매회 보조석까지 관객이 들어찼다. 그로 인해 음악 팬들은 소극장 공연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불황에 빠진 가요계에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팬들의 성화 때문에 그는 또 한 번의 앙코르 공연을 연다. 그의 소극장 공연을 본 관객은 1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관객들은 이적의 작업실 같은 아담한 공연장에서 금방 만들어낸 듯한 느낌의 히트곡들을 맛봤다. 더욱 농밀해진 그의 연주는 ‘나무로 만든 노래’라는 타이틀답게 어쿠스틱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줬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적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변함없다”는 관객의 말이 귀를 맴돈다. 그는 최근 라디오 PD들이 뽑은 올 상반기 최고의 가수에 선정됐다. 진실된 노래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적은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대중음악을 질적으로 향상시켰다. 패닉·카니발·긱스 등의 공동 작업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음악평론가들은 그를 두고 “고이지 않는 물 같은 싱어송 라이터”라고 평한다. 이적이 있기에 음악 팬들은 정말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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