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신경질적 반응/남북 실무접촉 결렬 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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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가한 얘기말고 바로 회담하자”/북측기자 “미국 행동은 선전포고”
○…19일 오전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제8차 실무접촉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제여론이 강경대응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시종 긴박한 분위기.
이날 접촉은 특히 양측 대표들간에 회담시작전 의례적으로 주고 받는 「덕담」조차 생략한채 무거운 분위기속에 곧바로 비공개 회의를 시작.
오전 10시 정각 양측 대표들이 회담장에 마주앉으면서 우리측 송영대 수석대표가 먼저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고 인사를 건넸으나 박영수 북측 단장은 말없이 보일듯 말듯한 미소로 응답했고 다른 북측 대표들도 냉랭한 표정이 역력.
○…송 대표는 『지난주에 이어 주말에 다시 접촉을 갖게 됐다』고 운을 뗀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주말나들이를 해 휴식과 식사를 즐기고 있는 국민들에게 기쁨을 더해줄 수 있느냐는 오늘 접촉결과에 달려있다』고 북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
북측 박 단장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기자선생들이 적게 나왔구먼』이라고 딴청을 부려 대화가 잠시 끊기는 등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
박 단장은 이어 『이제 한가한 얘기를 나눌 필요없이 바로 회담에 들어가자』고 요청했고 우리측 송 대표가 『관례에 따라 비공개 회의를 시작하자』고 호응,불과 3분만에 「공개회의」를 종료.
○…북한측 기자들은 『미국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최근 행동은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주장.
한 북측 기자는 『미국이 정 우리와 전쟁을 하겠다면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결연한 표정. 그는 『남측 기자들도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 각오가 돼있지 않다면 미리 미국여권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다른 북한기자는 『미국과 한국이 왜 그렇게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느냐』고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이에 앞서 북측 박 단장은 오전 9시45분쯤 「평화의 집」에 도착,냉랭한 표정으로 2층 회담장옆 북측 대기실로 직행.
박 단장은 「평화의 집」 앞에 마중나온 송 대표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으나 대꾸도 하지 않아 이날 접촉의 분위기를 예고.
○…북측 기자들은 이날 한미 양국이 남북 특사교환을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개최조건으로 연계하는데 대해 지금까지 어느 접촉때보다 신경질적인 반응.
한 북측 기자는 『남측은 왜 민족내부 문제를 미국과 연결지어 해결하려 하느냐』며 『남조선 사람들은 자주성도 없느냐』고 비난.
또 다른 기자는 『우리 북조선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 것인데 왜 남조선과 미국은 쓸데없는 조건을 내세우고 난리냐』고 지적.
한 북측 관계자는 『이날 회담에 성과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70년대부터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 남북회담의 현주소』라고 빈정대기도.
○…회담장을 받차고 나온 북측 박 단장은 대기중인 기자들이 접촉결과를 묻자 『송 대표에게 물어보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 박 단장은 2층 회담장에서 계단을 통해 1층 로비로 내려오는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은채 시종 냉랭한 표정.
박 단장은 승용차에 탑승,판문점 북측지역으로 넘어가기 앞서 송 대표에게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송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박 단장을 배웅.<판문정=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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