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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워~' 눈물 짜내는 실연노래에 빠진 10대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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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FT아일랜드 홈페이지


“그대 나를 이렇게 멀리 떠나가야만 했니? 그냥 내 목숨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젠 날 잊고 살아갈 무정한 사람. 그냥 내 전부 다 바쳐 사랑할 사람. 이제 날 잃고 살아갈 너.”

몇 주째 방송가와 인터넷을 휩쓸고 있는 FT아일랜드라는 5인조 아이돌 그룹의 노래, ‘사랑앓이’의 일부다. 이런 성숙한 노랫말을 애잔한 멜로디에 얹어 부르는 이들의 평균 연령은 17.5세. 아직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나이다. 고등학생 또래들이 ‘내 전부를 다 바쳐 사랑할 사람’이라고 절규한다? 어딘가 어색하다. 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는 “10대 아이돌 스타들이 과연 그 노랫말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기계적으로 흐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0대가 진짜 사랑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뭔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 최근 가요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가요계는 확실히 10대의 이별 노래가 대세다. 국내 최대의 가요 다운로드 사이트인 멜론의 8월27일자 톱 10 순위를 보자(아래 도표 참조). 10곡 가운데 무려 9곡이 이별 노래다. 실연으로 인한 상심을 노래한 것들이다. 노랫말도 한결 같다. 이 곡들 모두 이별ㆍ눈물ㆍ후회란 단어로 넘쳐난다. 가사만 보면 40대 이상이 즐겨듣던 성인 가요를 방불케 한다. 멜로디나 창법도 엇비슷하다. R&B 혹은 소울 형식을 빌린 이른바 ‘소몰이’ 창법이다. 구슬픈 곡조에 절규하듯 부르는 방식. 또 ‘워~워’라는 추임새도 빼놓지 않는다. 10대가 부른 이별 노래는 차트 상위 다섯 곡 가운데 세 곡을 차지할 정도다. 나머지도 모두 20대가 부른 이별 노래다. 이런 노래를 부른 이들 가운데는 그나마 28살인 MC몽이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왜 요즘 가요계에서는 10대의 이별 노래가 강세일까? 10대와 20대의 실연가 일색일까? 우선 아이돌 그룹이나 스타들이 모두 연예기획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인기에 목을 매는 연예 기획사들로서는 최근 유행하는 음악만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돌 그룹이나 스타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다양성을 추구할 여지가 없다. 더욱이 얼굴과 끼 위주로 선발된 10대와 20대 가수들 가운데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싱어송 라이터 감이 없다. 이들은 20대 이상의 작사가와 작곡자들이 만든 노래를 자신의 심정인 양 부를 수밖에 없다. 절절한 가사와 애끓는 곡조의 ‘사랑앓이’ 역시 27세의 류재현(바이브의 멤버)이 작사ㆍ작곡했다.

그렇더라도 왜 R&B 풍의 소몰이 창법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가? 가수 김창완이 한 남성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울음도 이렇게 길지는 않을 거다’라고 짜증을 냈던 것이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그후 1년여가 흘렀지만, 그 당시보다 이별의 상심과 절규가 더 커지면 커졌지 줄지 않았다. 당장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철이었으면 으레 강세를 띠었을 이른바 ‘계절 가요’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고작 브라운아이드걸즈의 오아시스 정도다.

왜 그럴까? 대중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음반 산업이 음원 산업으로 바뀌고, 음원 산업의 주 소비자들이 10대로 바뀌고 있는 환경 변화가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10대들이 음악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듣고 즐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휴대전화 컬러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길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 막 연애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들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이성이 알아주기를 간절히 원할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지나치게 어른스럽다 싶은 이별 노래가 제 격이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가 일본 대중가요인 J-팝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벤치마킹 하는 것도 10대 이별 노래가 가요계를 독점하는 이유다. 10대 아이돌들의 R&B 풍 소몰이 창법, 이별 노래는 사실 일본 대중가요계가 우리에 앞서 이미 상품화해, 재미를 톡톡히 본 분야다. 그걸 우리가 지속적으로 따라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얘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는 지난달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마자 일본 가요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여영 기자


<8월27일 인터넷사이트 멜론의 가요 톱10>

1. 거짓말-빅뱅(평균 나이 19세)-이별 노래

2. 착한 거짓말-이승기(나이 20세)-이별 노래

3. So fresh-MC 몽(나이 28세)-이별 노래

4. 사랑앓이-FT아일랜드(평균 나이 18세)-이별 노래

5. 물끄러미-지아(나이 17세)-이별 노래

6. 나 이젠-V.O.S 최현준(나이 26세)-이별 노래

7. 눈물로-제이(나이 29세)-이별 노래

8. 오아시스-브라운아이드걸즈-계절 가요

9. 미련한 가슴아-M.C the Max(평균 나이 25세)-이별 노래

10. 사랑의 인사-씨야(평균 나이 21세)-이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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