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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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의학의 이론화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공학도 출신의 한 젊은이가 한­약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한약은 죽었다』는 주목할만한 저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의 한약은 옛날에 비해 그 효능이 크게 떨어져 이제 한약은 한의사의 구원이 될 수 없고,오히려 대폭 손을 봐주어야 할 퇴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한약의 효능이 크게 떨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은 것이 「재배약재와 수입약재의 급증」이었다.
고대 의술의 개념으로는 『이 세상에 약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게 정설처럼 되어 있지만 식물이든,동물이든 그것이 약재로 쓰이는 경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 또한 통설이다. 약재가 자라난 기후·토양 등 주변환경과 이를 섭취하는 사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이나 보신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남다른 집착은 다른 나라에서 이름난 약재나 식품이라면 그 과학적 근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선호하는 경향을 낳았다.
한약재로 쓰인다는 코뿔소 뿔도 그중의 하나다. 코뿔소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상에 광범위하게 서석해오고 있었지만 한반도에도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그나마 멸종상태에 이르러 희귀동물 보호차원에서 여러나라들이 각별하게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코뿔소 뿔이 언제부터 한약재로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의 체질에 얼마만큼 효능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음은 물론이다.
국제거래조사위원회가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 두차례에 걸쳐 서울·부산 등 5대도시의 한약방과 약국을 방문조사한 결과 43%의 업소에서 코뿔소 뿔이 함유된 약재를 팔고 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르긴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이나 「장수의 비약」으로 선전되면서 고가로 팔려나갔을법 하다. 국제자연보호기금이 코뿔소 뿔과 호랑이 뼈의 불법거래를 들어 한국에 통상제재조치를 취하도록 미국정부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동물보호협회가 한국인 가운데 40만명이 고양이 고기를 먹어본 일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일도 있고보면 통상에 대한 영향도 문제지만 동물에 대한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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