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1년 이인모씨 정치선전 징발 바쁜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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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전향 장기수 李仁模씨(77)가 北韓으로 송환된지 19일로 꼭 1년이 된다.
문민정부 출범후 첫 對北 조치였던 李씨 송환은 남북대화에서 수차례 걸림돌로 작용한 李씨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함으로써 北韓 核문제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자는 취지였다고할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뜻과는 달리 그의 송환은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여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北韓당국에 의해 갖가지 정치선전에 이용되는 결과를 낳아 정부를 당황케 했다.
李씨는 송환된뒤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평양의 딸(45)집에서 부인(67).딸 가족과 함께 살며 북한의 정치선전에 동원되는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北韓이 李씨 송환을 선전차원에서 활용한 사례는 대략▲북한체제우월성 선전▲金正日의 배려 선전▲對南비방등 세가지다.
북한의 의도는 이미 그가 송환되던 지난해 3월19일 판문점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판문점 앞 도로에 늘어선 開城지역주민 5백여명은「의지의 화신 리인모」「통일의 영웅 리인모」등이 쓰여진 피킷을 들고「조선은 하나다」「우리의 소원」 등 노래를 합창했다.
판문점은 금세 북한의 정치선전장으로 변했다.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 걸린 대형현수막에는『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리인모동지를 열렬히 환영한다』고 적혀있었다.
이날 평양의 방송매체들은 그의 도착소식을 실황중계까지 하는 전례없는 소동을 벌였다.평양에서는 30만 군중이 동원된 대규모환영행사가 열렸고 李鍾玉부주석.崔光총참모장.金容淳당비서.金仲麟당비서등 당.정.군 고위인사들이 참석해 그 행사 의 정치적 의미를 더했다.
이날 노동신문은『리인모동지가 조국의 품에 돌아온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이며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우월성의 과시』운운하는 사설을 실어 선전방향을 예고했다.
북한은 李씨에게 최고 영예인「공화국 영웅」칭호를 주고 지난해4월 金日成 생일을 앞두고는 金日成훈장도 수여했다.지난해 5월부터는 그를「혁명가의 표본」으로 삼아「이인모 따라배우기운동」까지 벌여 金日成에게 보인 그의 충성심■ 본받자는 정치캠페인으로이어졌다.
최덕신.윤이상.최홍희등 남한출신중 북쪽으로 돌아선 인사들의 전기영화인 다부작『민족과 운명』의 11~13부를 李씨 소재로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기록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그가 다녔다는 양강도 金亨權郡(옛 풍산군.90년개칭)의 파발인민학교는「리인모인민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3.1월간상,금성출판사 명예기자등 각종 칭호.훈장이 그에게 수여되는가 하면 北韓주민들이 보낸 위문품이 답지했다.
그를 소재로 한 우편엽서와 우표(청년시절의 그가 감옥에 들어가 노인이 되어 나오는 모습)발행도「李仁模 열풍」을 부채질했다. 李씨는 건강이 회복되자 지난해 8월22일 가족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백두산에 가 사적지와 金正日이 출생했다는「고향집」을 참관하고 김형권군 파발리의 모교를 방문했다.
北韓의 선전화보집 『조선』93년 11월호는 그의 활동을 담은사진 9장을 싣기도 했다.
한편 北韓은 李씨 송환을 金正日과 교묘하게 결합시키는 선전도아울러 진행시켜왔다.
金正日은 7월 金日成이 평양에서 열린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한 李를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는 한편 8월24일엔 43년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맞는 그의 76세 생일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북한은 그를「통일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한편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리인모를 폐인으로 만든 파쇼무리들」로 적극 비난해왔다. 李씨는 기회가 날때마다 『남한에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없는 고문과 박해를 받아 운신도,말도 제대로 못하는 종신불구자.폐인이 됐다』고 악선전했다.
북한은 그의 송환에서 상당히 「재미」를 본듯 이제 다른 미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들고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北韓적십자회의 이성호 위원장대리가 미전향 장기수 김인서.함세한씨등의 북송을 요청하는 서한을 우리측에 보내고국제적으로도 이를 호소한데서 알 수 있다.
〈兪英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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