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9월 말 미국 안 가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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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대통령 임기(2008년 2월 25일) 막바지에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여덟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하려던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 사실상 무산됐다. 노 대통령은 9월 하순 열릴 유엔 총회 참석차 방미하는 길에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다음달 8~9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릴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노무현.부시 회담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27~29일 방미해 스티븐 해들리 미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회담 의제를 논의한다.

외교가에선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온다.

먼저 미국 방문 정상회담이 취소된 이유다. "남북 정상회담(당초 8월 28~30일)이 10월 2~4일로 연기되면서 임기 말 정상 외교의 구상이 헝클어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느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계획을 바꾸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도 어려워졌다.

부시 대통령은 7월 1일 노 대통령이 미국 시애틀에 들렀을 때 전화통화를 하면서 올 가을 미국 방문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과테말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느라 시애틀에 중간 기착했다. 이후 외교안보 라인에선 9월 말 또는 10월 초 노 대통령이 미국으로 건너가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조율해 왔다.

일각에선 호주 시드니에서 열릴 노무현.부시 대통령의 회담 농도가 묽어질 것을 우려한다.

APEC에선 각국 정상이 짧은 일정 속에 4~5개국의 정상과 양자 회담을 하는 관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에 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것과 호주 시드니에서 끼워 넣기 식으로 회담하는 것은 크게 차이 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이 남북 정상회담 뒤 다시 열릴 가능성도 별로 없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려면 일정을 잡는 데만 두세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무현.부시의 '시드니 만남'이 마지막 정상회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 일곱 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다.

그래서 시드니 정상회담은 지난해 7월 열렸던 미.일 정상회담과 대비된다. 5년5개월 동안 권력을 잡았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퇴임 두 달 전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과 고별 정상회담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1954년형 자동전축(jukebox)을 선물하면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애창곡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함께 열창했다. 융숭한 대접과 찬사를 통해 미.일 간 끈끈한 밀월관계를 과시한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1년 전 부시 대통령과의 마지막 정상회담에서 대북 햇볕정책을 놓고 의견 충돌을 빚었다"며 "그것이 한.미동맹 관계에 큰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은 "한.미 정상이 중대 국면에 접어든 북핵 해결 프로세스의 진전을 집중 논의할 기회가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 한반도 전문가는 "두 정상이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전화통화 등을 자주 하면서 서로 입장을 조율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양수.김성탁 기자,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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