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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아서 더 센 친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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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03면

“어, 눈이 안 보이네.”
8월 17일 아침 이상득 국회 부의장은 출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다. 7월 30일 하루 일정을 보면 이 부의장이 몸을 혹사한 강도를 알 수 있다. 오전 7시30분쯤 집을 나선 그는 비행기편으로 포항으로 내려갔다. 9시50분 포항 도착. 그는 승용차로 경산∼영천∼청도∼고령∼성주∼칠곡∼문경∼예천을 돌았다. 하나같이 이명박 후보 지지가 열세인 지역이었다. 그는 이 후보 캠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가 경주의 숙소인 코오롱 호텔로 든 시각은 그날 자정이 다 돼서였다. 35년생인 그는 올해 일흔둘이다.

<'MB 대통령' 꿈꾸는 13人의 정치두뇌>李 후보의 영원한 버팀목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 부의장은 이런 일정으로 줄잡아 전국을 세 바퀴 돌았다. 이 후보의 취약지인 불교계 마음을 붙잡기 위해 통도사·범어사·은혜사·구인사 등 전국 주요 사찰 80여 곳을 돌았다. 주변에선 “자기 선거보다 더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의장의 일정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이 후보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선기간 그의 동선은 늘 이 후보와 엇갈렸다. 이 후보가 부산을 떠나면 부산에 들어가고, 광주에 오기 전에 광주를 다녀오는 식이었다. 올 1월 초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구 매일신문사 주최로 대구·경북 신년 하례회가 열렸다. 이 부의장이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눌 무렵 이 후보가 도착했다. 그는 미련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을 나왔다. 형제가 같이 있는 것이 남들 보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부의장은 이명박 후보의 친형이다. 여섯 살 터울의 형제는 애틋하지 않았다. 공부를 빼어나게 잘했던 형은 집안의 대표선수였고, 가난했던 부모들은 대표선수 한 명을 밀어주는 처절한 생존전략을 택했다. 이 후보는 중학교까지만 다닐 뻔했다.
“머리 좋고 잘생긴 형님 덕분에 손해를 봤었어요.”

이 후보는 편한 모임에 가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부의장은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씩 웃어넘겼다. 결과적으로는 형제의 부모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졸업 후 코오롱에 입사한 이 부의장은 가족의 생계는 물론 집안 대소사를 챙겼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 후보는 집안 걱정 없이 일에 몰두했고, 샐러리맨의 신화가 탄생했다. 지금까지도 종친회와 집안 길흉사는 이 부의장의 몫이다.

정치인 이상득은 동생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됐다. 대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는 더 그랬다. 정책위의장-사무총장-원내대표 등 다섯 차례의 당직을 거치면서 쌓은 인맥과 얻은 인심은 당심이 박 전 대표에게로 쏠리지 않도록 하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이 부의장은 불교계를 유난히 챙겼다. 그가 불교계에서 얻은 점수는 그대로 이 후보의 약점을 메웠다. 불교계 인맥이 두터운 주호영 의원을 캠프로 데려오는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한때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전여옥 의원이 돌아서는 데에도 그의 역할이 있었다. 그는 중립지역의 의원들을 두 번, 세 번 만났다. 이 후보 지지를 내놓고 부탁하지 않는 그의 정성이 외려 의원들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사석에서 “나같이 부드러우면 나라 일이 안 된다. 리더는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을 낮추고 이 후보의 리더십을 부각시켰다.

동생은 정치적 기로에 설 때마다 형의 의견을 존중했다. 4·25 재·보선 패배 뒤 강재섭 대표가 내놓은 당 쇄신안을 이 후보가 받아들인 배경엔 이 부의장의 조언이 있었다. 이 부의장은 경선 룰을 놓고 박 전 대표 측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당이 있어야 주자도 있다”며 이 후보의 화합 결심을 이끌어냈다.

이 부의장은 경선기간 중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았다. 이 후보와 동선이 다르기도 했지만 안국포럼에도, 여의도 경선 캠프 사무실에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안국포럼에 안 가는 이유에 대해 “형인 내가 가서 살펴가지고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싶다”고 말했었다.

경선이 끝나자 국회 이 부의장 집무실엔 사람들과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국회 밖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었다. 동생을 위해 몸을 낮추고 세간의 주목을 피하는 것, 그것이 그의 힘이다. 그래서 이 후보 캠프 사람들은 더욱 그를 무섭게 느끼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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