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로 울려 퍼지는 ‘나눔 교향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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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03면

중ㆍ고등학교 남학생 60여 명은 쑥스러워하며 무대로 올라왔다. 관객들과 눈 맞추기를 부끄러워하는 사춘기 아이들이었다. 조심스레 각자 악기를 잡고 줄을 맞춰 앉았다. 곧 그들의 ‘우상’이 나타났다. 오케스트라의 눈빛이 빛났다.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정명훈(54)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으로 20일 밤 자선음악회를 시작했다. 바닷가 햇살에 그을린 소년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마에스트로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웅장하게 출렁였다.

보육원 아이들과 협연한 지휘자 정명훈

연주를 끝낸 정명훈이 객석을 향해 ‘정말 대단한 기적’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오케스트라 구성원들은 모두 가족이 없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가장 어리게는 세살에 소년의 집에 들어와서 큰 아이도 있다. 부모가 왜 자신을 버렸는지 고민하며 자랐을 소년들이다. 하지만 서로 소리를 맞출 때만큼은 정명훈도 “놀랐다”고 말할 만한 투지를 보였다.

이 분위기 때문에 정명훈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에 ‘중독’돼 있다. 그는 특유의 느린 말투로 “부산에 가면 기분이 너무 좋다”며 슬며시 웃는다. 평상시 엄숙하고 말을 아끼는 그가 이 소년 오케스트라 얘기만 나오면 얼굴에 주름이 지도록 은근한 미소를 짓는 이유다. 나흘 동안 다섯 번 무대에 서야 했던 바쁜 일정 중에 틈틈이 부산에 내려가 오케스트라를 지도하는 이유도 이 기분 때문이다.

그는 요즘 “젊었을 때는 먹고살기 힘들고 아이들 기르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사회의 소외된 이들과 음악 하는 후배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옛날 한국의 이미지는 다른 나라에서 실컷 장학금 받고 공부해 오는 것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베푸는 사람들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음악적 완벽을 추구하던 삶에 균형을 맞출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것. 그가 찾은 해답이 사회적 나눔이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고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 라디오 프랑스 필을 맡으며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였던 정명훈이 이제 “최고의 연주를 바라던 나의 음악적 목표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이루고 싶은 성취는 크게 세 가지다. ‘음악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 남북 교류에 음악으로 공헌하는 일, 클래식음악 애호가의 저변 확대’. 이 셋을 꼽는 정명훈은 “언젠가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 때문에 그는 한국에서도 재능이나 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문화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통하는 것뿐”이라는 그는 값비싼 개런티를 주는 해외 공연 대신 구청으로 시민들을 찾아가는 무료 음악회에서 더 행복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한·중·일의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아 1997년 만든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아시아 내에서 싸우고 헐뜯는 나라들이 음악으로 아름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그가 마련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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