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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는 도시의 ‘투명한 갤러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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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23면

쇼윈도, 윈도 디스플레이의 뜻은 가게에서 진열한 상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 유리창이다. 최대한 제품을 돋보이게 진열해 고객으로 하여금 그 매장 안으로 들어와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만 진열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브랜드 즉 쇼윈도를 제작하는 주체가 추구하는 이념은 물론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토리 박스 형태를 띠고 있다. 제품보다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이 크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이나 CF처럼 몇 분 아니 몇 초 안에 마음을 사로잡아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각 브랜드들은 영악한 고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년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짜 전 세계적으로 같은 이미지의 컨셉트를 이끄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각 나라나 도시의 개성을 끄집어내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해 보다 창의적인 쇼윈도를 추구하기도 한다. 예술작가와 함께 작업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갤러리로 꾸미고 때로는 상품이 아닌 하나의 이벤트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해 고정관념을 탈피한 쇼윈도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국내에서 작가와 함께 쇼윈도를 제작한 최초의 브랜드는 에르메스다. 에르메스는 2004년부터 국내 미술계를 후원하며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중의 몇몇 작가와 작업해 실험적이면서도 에르메스만의 고급스러움을 살린 쇼윈도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초에서 지난 7월까지 에르메스의 쇼윈도는 역동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살사·발리댄스·캉캉 등을 추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게 형상화한 플라잉시티의 ‘춤’, 오렌지 컬러의 평면 부조 인간이 댄스 배틀을 하는 배영환의 ‘댄스 배틀’이 전시되어 클래식한 멋을 풍기는 에르메스 쇼윈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댄스 배틀’의 경우 댄스 배틀을 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최고의 것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에르메스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지금 막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에르메스 쇼윈도는 다시 배영환의 손길을 거쳤다. ‘운명-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필연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을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모르는 주사위에 비유했다. 각 백화점 내의 매장과 도산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건물을 지날 때면 몇 초 후도 예측할 수 없는 아이로니컬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술적인 감성 불어넣기
루이 뷔통의 쇼윈도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세계적인 작가와 작업해 파리·뉴욕·서울의 모든 쇼윈도가 한 맥락을 같이하기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올라프 엘리이슨의 ‘아이 시 유(Eye see you)’ 라는 제목의 쇼윈도가 전시되었는데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조명을 사용해 묘하게 쇼윈도로 빠져드는 효과를 주었다. 지난 7월부터 압구정 현대백화점 내의 루이 뷔통 매장이 한국 작가인 김홍석의 아이디어로 채워져 주목받고 있다. 외부 윈도에는 ‘possibility’라는 영어 텍스트와 ‘공동의’라는 한글 텍스트를 함께 사용했는데 작가의 필체를 그대로 옮겨놓음으로써 자유분방한 느낌을 선사한다. 한글과 영어라는 두 언어를 혼용해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을 드러낸다. 동시에 글로벌 문화와 로컬 문화 사이의 교차까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길 바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올겨울 루이 뷔통의 쇼윈도는 참신한 아트공간으로 거듭난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대학생 중 두 명을 선발해 ‘위도 48.914/경도 02.286’이라는 창의적인 작품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루이 뷔통의 역사적인 워크숍의 지도상 위치에 근거한 것으로, 지도의 등고선을 자연목으로 표현해 상상 속의 여행을 표현한다고 한다.

올해 2월 반클리프 앤 아펠 매장에서 선보인 쇼윈도도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2005년 SIHH(시계 박람회)에서 프랑스의 유명 아티스트 프레드릭 세인트 오빈과 함께 13개의 페이퍼 돌을 제작해 위트 넘치고 차별화된 디스플레이로 박수를 받았다. 살아 움직일 것 같이 섬세하고 정교한 인형들은 약 두 달간 한국 쇼윈도를 장식한 후 월드 투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특정 작가와 작업하는 사례 외에도 항상 독특한 쇼윈도로 눈길을 끄는 브랜드는 프라다와 모스키노가 대표적이다. 프라다의 경우 비주얼적인 면을 강조하는 브랜드인 만큼 대대적으로 쇼윈도가 바뀔 때면 항상 이슈가 되곤 한다. 모스키노 또한 재치있는 쇼윈도로 즐거움을 준다. 워낙 유머가 담긴 디자인의 옷으로 사랑받고 있기에 쇼윈도에도 동화 속 이야기나 유머러스한 면을 살리는 점이 특징이다. 가득 찬 옷으로 폭발하는 집이라든가, 갖가지 동물들이 있는 신기한 부티크의 모습 등 1998년부터 말레이시아 출신의 조안 탄이 새롭게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면서 대담한 아이디어의 쇼윈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벤트 장으로 떠오르는 백화점
쇼윈도 하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곳은 해러즈·하비니콜스·셀프리지와 같은 영국 백화점들이다. 과연 이곳이 물건을 판매하는 곳인지, 거대한 이벤트 공간인지 착각할 만큼 창의적이고 기발한 쇼윈도를 보여준다. 겨울에는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지정시간에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시원하고 아름다운 쇼를 보여주며, 자동차 브랜드와 함께 이벤트를 벌여 젊은 디자인 학도들이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셀프리지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주제와 연계해 쇼윈도를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6월에는 빅토리아와 앨버트 뮤지엄이 주관한 ‘초현실주의적인 것들-초현실주의와 디자인’을 쇼윈도에 적용해 살바도르 달리와 엘자 스키아파렐리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기본으로 디스플레이를 했다.

영국의 백화점이 4계절 내내 창의적인 면을 보여준다면, 파리와 뉴욕의 백화점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해 1년을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의 라파예트는 겨울이면 백화점 건물 전체가 아름다운 조명으로 빛을 발하며 곳곳의 쇼윈도는 마치 동화 속 나라에 온 듯 크리스마스 기분이 물씬 풍긴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스토리에 크리스마스 선물 사는 것을 잊을 만큼 빠져들 정도다. 12월 뉴욕 34번가 브로드웨이에 있는 메이시스 백화점 쇼윈도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광경이 종종 목격된다. 바로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움직이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쇼윈도는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보며 즐거워한다. 매년 뉴욕에서는 크리스마스 쇼윈도 어워드를 뽑는데 몇 년째 메이시스가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도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무척 신경 쓰는 편이다.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는 포토 섹션으로 자리를 잡았고, 신세계 백화점의 루미나리도 많은 이의 카메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안았다. 도심에서 만나는 신선한 쇼윈도의 세계! 각양각색의 쇼윈도는 거리의 커다란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충분히 즐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 박소희씨의 리포트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옥고를 보내주신 필자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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