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장관 54년 만에 리비아 방문…'20년 적' 카다피 동반자 인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라이스 국무(左), 카다피 원수(右)

무아마르 카다피(65) 리비아 국가원수가 국제무대에 완전히 복귀하게 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미국 외교 수장으론 54년 만에 처음 리비아를 방문하기로 함에 따라 양국 관계에 획기적 이정표가 만들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아메드 게브릴 주유엔 리비아 대표는 23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라이스 장관이 10월 중순께 리비아를 방문할 예정"이라며 "이번 주 초 트리폴리에서 미국 특사 데이비드 웰치와 리비아 관리들이 이같이 합의했으며 이는 양국 관계가 한층 두터워지는 증거"라고 밝혔다.

라이스 장관도 지난달 아랍어 방송 '라디오 사와'와의 회견에서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버리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며 "이에 따라 리비아에는 지금까지 막혀 있던 서구 기업들의 투자가 쏟아지게 됐다. 곧 리비아를 방문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라이스 장관의 리비아 방문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이던 존 포스터 덜레스가 리비아를 방문했던 1953년 이후 처음이다.

◆무얼 논의하나=라이스 장관은 카다피 원수를 만나 ▶지난해 복원된 양국 관계를 강화하고 ▶매장량 390억 배럴로 세계 9위인 리비아의 원유생산량을 2013년까지 하루 300만 배럴로 늘리는 프로젝트를 논의할 예정이다. 2005년 24억 달러에서 지난해 29억 달러로 늘어난 양국 교역을 증진하는 방안도 협의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라이스 장관은 카다피 원수가 수단 정부에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한 다국적군의 주둔활동을 수용하도록 압박할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프리카 문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표방해 온 카다피 원수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카다피의 화려한 복귀=라이스 장관의 방문은 서방을 겨냥한 핵.화학무기 개발과 각종 테러 사건으로 국제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됐던 리비아와 카다피 원수의 완전한 복권을 의미한다. 미국은 79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며 단교했다. 81년부터 2003년까지 리비아에 전방위 경제제재를 가하는 한편 86년에는 카다피를 겨냥해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의 완전 포기를 선언하자 미국은 2004년 경제제재를 해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도 복원했다. 이어 1년 만에 이뤄지는 라이스 장관의 방문은 미국이 20년 숙적 카다피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손을 잡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