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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책 읽고 또 읽어 하버드·MIT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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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순규(왼쪽에서 셋째)씨가 22일 뉴저지 자택에서 한국에서 온 장애청년 및 인솔자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격려하고 있다.

“시각장애든 경제적 어려움이든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심각하게도 하찮게 될 수도 있습니다.”

22일 미국 뉴저지주 서밋시의 아담한 흰색 집의 응접실.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뉴욕 금융가에서 애널리스트로 자리잡은 신순규(40)씨가 한국의 장애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경쟁이 치열한 월가에 뛰어들어 성공한 입지전적 금융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회사채 분석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월가에 투신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장래가 촉망되고 의지가 굳은 장애청년 3명을 미국에 살고 있는 신씨에게 보내 그의 경험담과 조언을 듣도록 알선했다. 이 협회는 2005년부터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장애청년들을 세계 여러나라에 파견, 성공한 장애인사와의 인터뷰나 제도 탐방을 통해 자립의지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이다.

신씨는 모국의 후배 장애인들에게 “요즘 한국 경제도 고도화돼 제조보다 서비스가 중시되고 있다”며 “앞으로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당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의 의지”라며 “기회가 무궁무진한 만큼 절대 좌절해서는 안된다”고 격려했다.

10세 때 시력을 잃은 신씨는 1981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맹학교 측의 주선으로 15세 때 유학온 경우다. 시각장애 남성 4중창단의 반주자로 미국에 들렀다가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맹학교 관계자들이 전액 장학생 유학을 권유했다. 연주곡의 음계를 모두 외워 피아노를 훌륭하게 연주하던 그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미국에 유학온 신씨는 1년 뒤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며 일반학교로 전학한다. 일반학생들과 경쟁하느라 점자책을 구해 밤새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신씨는 “수학 선생님께서 내게 기하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 무척 당황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웃었다.

그는 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그 후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1994년 기업조직 연구차 JP 모건에 취직했다가 금융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신씨는 98년 현재의 회사로 옮겨 애널리스트가 된다. 그는 컴퓨터 화면의 문장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Screen Reader)’라는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활용, 실시간으로 전 세계 시장동향을 파악하고 분석자료를 내놓고 있다.

글·사진=뉴욕 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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