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 대통령 겨냥한 사과 요구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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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이 23일 열린우리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분당과 특검은 그동안 DJ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섭섭함을 느껴왔던 사안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사석에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단골 메뉴였다.

DJ의 이날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정세균 전 의장 등 열린우리당 마지막 지도부의 예방을 받는 자리였다. 관례상 덕담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DJ는 작심한 듯 "오늘은 쓴소리를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 과정에서 사과하고 청산했어야 하는 것으로 ▶분당 ▶특검 ▶국정원장 두 명(임동원.신건) 구속 문제를 들었다. 모두 노 대통령의 결심으로 진행됐던 사건들이다.

DJ는 "국민은 민주당에 정권을 줘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 줬는데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갈라섰다"며 "국민의 마음이 열린우리당을 떠난 것은 분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선 "민족적인 일을 정략적으로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 애초 문제가 됐던 북한과의 문제는 (특검 과정에서) 문제도 되지 않고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150억원(뇌물 수수 혐의)도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무죄가 됐다"고 말했다.

DJ는 "안기부 X파일은 문민정부가 나를 도청한 게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임동원.신건 두 국정원장을 아무런 증거 없이 부하 직원 몇 명의 말만 듣고 구속했다"고 비판했다. 배석했던 윤호중 의원은 "과거 정부가 DJ를 도청했고 그것이 X파일로 남아있는데 오히려 도청을 중단시킨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건 문제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DJ 측의 최경환 공보비서는 "제대로 청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J의 이날 발언은 형식상 열린우리당 전직 지도부에 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DJ는 "분당과 특검은 열린우리당에서 책임져야 했다"며 "그랬으면 국민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DJ의 발언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첫째,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같은 강력한 후보가 등장했는데 전통적 범여권의 결집을 위해 반드시 분당, 특검에 대한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둘째, 노 대통령에 대한 압박 메시지라는 시각이다. 정권재창출을 위해선 노 대통령의 독주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이해찬 전 총리 같은 친노 세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데 대한 경고라는 분석도 있다.

DJ는 386 정치인도 질타했다. DJ는 윤호중.오영식 의원 등이 배석한 상태에서 "386 정치인들이 위기에 처해 있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엄중한 반성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를 계속하고 싶으면 전라도와 경상도,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배낭을 메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어 왜 민주개혁 정부가 재창출돼야 하는지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이에 대해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코멘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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