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울산 성진지오텍, 10년만에 수출 100배…정유탑 분야 세계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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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도 지구촌을 누비는 글로벌 중견기업들이 많다. 지역 경제가 바닥이라고 하지만, 진작 해외로 눈을 돌린 이들에겐 ‘다른 나라 얘기’다. 울산에 있는 초대형 에너지 설비업체인 성진지오텍(사장 전정도·사진)이 그런 회사다. 일반인에겐 낯설겠지만 조선·플랜트 업계에서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중견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성진지오텍의 화학플랜트용 정유탑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32%)에 올라 올 6월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세계일류상품’에 들기도 했다. 지난해 1억 달러를 수출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7년 해외 진출 첫해에 100만 달러를 수출했으니 꼭 10년 만에 수출액이 100배나 늘어난 것이다. 최근 3년간 매출액의 80%가 수출이다.

 울산 용연공단 내 성진지오텍 본사는 석유화학 플랜트를 제작하는 1공장과 맞닿아 있다. 사장실에서 만난 전정도(48·사진) 사장은 군화 비슷한 모양의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 무겁고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사장실도 현장의 일부”라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답했다. 그는 철저한 현장 중심의 경영자로 소문나 있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훑고 다닌다.

 성진지오텍은 2002년 전남 광양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폐열회수설비(HSRG)와 프랑스 시뎀사의 담수화 플랜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본의 지요다, 미국의 벡텔과 엑손모빌 등 글로벌 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해 이들로부터 대규모 플랜트 설비를 잇따라 수주했다. 한번 만들었다 하면 1000t 이상 되는 제품이 대부분이고 3월엔 1000t급 초대형 플랜트를 세계 최단 기간(10개월)에 제작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은 2148억원. 고유가 시대에 산유국을 중심으로 플랜트 발주량이 늘고, 조선시장의 호황이 이어지면서 올해 예상매출은 3530억원으로 기대한다. 전 사장은 “울산 네 곳의 생산기지가 모두 부두를 끼고 있어 1000t 이상의 초대형 설비를 제작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중후장대형 산업에서는 일단 장비와 공장이 커야 승산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팔아 봐야 얼마 남지 않는 부품보다 덩어리가 큰 패키지 형태로 수주해야 생산효율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유가 시대의 신규 플랜트는 중동이나 러시아처럼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세워야 하는 경우가 많아 설비를 공장에서 상당 부분 조립한 뒤 배로 운송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 당연히 플랜트 프로젝트의 단가도 오르게 마련이다.

전 사장의 이런 경영관은 부산 성지공고를 졸업하고 1982년 울산에 유영기공사를 창업한 뒤 더욱 분명해졌다. 볼트를 만들어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게 일이었다.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찾아온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87년 현대중공업은 큰 노사분규를 겪은 뒤 제작 공정의 상당 부분을 중소업체에 넘겼다. 전 사장은 그중 석유화학 플랜트용 부품 공급을 따냈다. 성진기계라는 사명으로 회사를 다시 차렸다. 때마침 호황이라 대기업들이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전 사장의 일감도 늘어만 갔다. 90년 30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이듬해 20억원으로 뛰었다. 회사뿐 아니라 전 사장 자신의 ‘업그레이드’에도 성공했다. 고급 기술을 제대로 배워 보겠다는 열망에 부산 동아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주경야독으로 93년 34세의 나이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94년부터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로 선체의 부분에 해당하는 블록 생산을 시작했다. 지금은 블록 생산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선수(뱃머리)와 선미 부분만 제작한다. 조선 분야의 매출은 전체의 15% 수준이다.

  크고 작은 어려움도 많았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대기업이 부도를 내면서 갖고 있던 매출어음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했다. 2001년 성진지오텍으로 사명을 바꾼 이듬해 이스라엘 회사에서 클레임을 심하게 받았다. 발전소에 납품한 대형설비 가운데 하자가 생겨 1300만 달러를 물어줬다. 세상사 참 알 수 없다고 전화위복인 면도 있었다. 정현주 경영기획 이사는 “울산의 자그마한 회사가 거액을 변상했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오히려 발주업체들한테 ‘믿을 만한 회사’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4년 중국발 원자재 대란도 이 회사엔 위기이자 기회였다. 원재료비가 평균 70% 이상 뛰었지만 수주 산업의 특성상 원가 차이를 보상받지 못했다. 게다가 환율은 9%나 떨어져 2004년 영업손실이 66억원에 달했다. 다행히 2005년 은행에서 받은 공사대금채권담보부대출(ABL) 300억원과 미래에셋 투자금 412억원을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며 위기를 넘겼다. 이후 전 사장은 유동성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해 지금은 무차입 경영을 한다.

 위기와 기회의 파도타기를 해 온 전 사장은 세계 시장의 호황 국면에서 성진지오텍의 미래를 준비한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해양 및 담수화 플랜트가 일차 공략 대상이다. 전 사장은 “2010년 에너지 종합 중공업 업체로서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세계 10대 플랜트 장비업체에 오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울산=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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