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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령화 사회 대책] 실효성 있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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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왠지 서두르는 모습이다. 고령화와 출산 감소가 화급한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대책에도 순서와 단계가 있을 텐데 단박에 법을 들고 나왔다.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법만 앞서나가는 꼴이다. 이미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란 말이 유행어가 된 터다. 우리의 경우 한 기업에서 평균 정년 57세를 채우고 퇴직하는 근로자는 1천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구조조정.명예퇴직 등으로 도중하차한다.

짧은 실질 정년을 연장하려면 연공서열의 임금체계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이번 대책엔 빠져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은 앞으로도 인건비 부담이 큰 고령자를 주요 해고 표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부연구위원은 "연공 중심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년 보장은 불가능하다"며 "생산성에 맞춰 나이가 들면 임금을 낮추는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란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한 연령 이후에는 급여를 깎는 제도다.

그러나 임금체계를 바꾸자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우선 노동계가 임금 삭감의 구실이 된다며 반대한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경우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이 크게 줄어든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는 생계가 막막해진다. 이 때문에 차제에 금리도 이런 취지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해친다는 반응도 많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어거지로 정년을 늘려 놓으면 고용의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고령자 채용이 많아지면 젊은이들의 취업 사정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특히 정년 연장이 이뤄지려면 해고권 강화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밥통 샐러리맨'이 양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봉경 기아자동차 이사는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년 연장은 기업 부담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물론 고령인력의 활용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선진국들은 고령자 고용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1966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데 이어 86년엔 정년제도를 아예 없앴다. 일본도 65세까지 취업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곧 개정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고용 연장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갖춰 왔다. 일본만 해도 제조업체들이 먼저 일자리 나누기(워크셰어링).임금피크제.정년 연장을 차례로 도입했다.

문제는 경제다. 정부가 굳이 법을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기업이 잘 되면 고령자.청년 할 것 없이 많이 뽑는다.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해 고용을 증진시키는 것이 정도"라고 말했다. 경제 살리기가 최고의 복지대책이라는 것이다.

한편 연간 수조원이 필요한 저출산 대책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대구가톨릭의대 박정한 교수는 "그 돈을 준다고 애를 더 나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오히려 교육 문제 등 애를 낳지 않으려 하는 근본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근.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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