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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야기>작가 조선작씨-공주병 왕자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우리집 아이들이 공주병이니,왕자병이니 하면서 서로 다투길래 처음엔 나도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알고봤더니 신세대 용어로 자기들이 자기중심적 에고랄까 나르시즘 같은 편향적 가치관에빠져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었다.정신과적으로도 병 명이 있을 듯하다.스스로를 공주요,왕자로 여긴다면 과대망상증이 아닐는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땅에 그런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신세대를양산한 것은 바로 우리같은 구세대다.
戰後 잿더미 속에서 고추장에 밥 비벼먹으며 萬難을 무릅쓰고 살아온 우리가 자식들에게는 고생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기를 썼던결과 공주병.왕자병 환자를 대거 만들어 놓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자신은 비만 오면 물이 새는 신발을 신고 2~3㎞ 진흙탕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둘은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리 12년동안 승용차로 실어나른 것이다.
무라카미의 소 설『국경의 남쪽,태양의 서쪽』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남자 주인공 하지메가 승용차를 몰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역시 아이를 데리러 BMW를 몰고오는 어떤 부인과 자주 만나 친해진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통학편의의 제공만을 사례로 든 것이지만 맛있는 것은 아이들 먼저 먹인다든지,아이들이 안입는 옷을 엄마가 입어 떨어뜨린다든지 등등.그저 멋모르고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생활패턴이 바뀌어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가난을 세습하지 않겠다는 구세대의 각오가 엉뚱한 결과를 낳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엊그제도 아이들이 공주병.왕자병 해가면서 말다툼을 벌이길래『왜들 또 그러니』하고 끼어들었다.그랬더니 밑의 아들녀석이 먼저호소했다.
『글쎄,누나 말예요.자기 쫓아다니는 어떤 남학생이 범접할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우쭐해서 저러잖아요.』 『그럼 넌 왕자병 아니니.부잣집 딸에게 장가가고 싶다며.너야말로 왕자병이야.
』 『왕자병은 그래도 군대가서 실컷 두들겨 맞으면 고칠수 있대.그런데 누나같은 공주병은 고질이어서 공주癌이나 공주에이즈로 발전해.그저 죽기나 해야 낫는 병이라구.알아?』 『남이야.』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적어도 그런 인식들은 있고 신세대의 그런 용어 자체가 그들 자신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챌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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