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남북 경제통합 원칙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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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02년 7월에 시작된 북한의 경제개혁에서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북한 내부의 정치 안정과의 관련성이다. 지난 수년간의 외교 행보와 달리 경제개혁은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켰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경제와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

경제개혁은 사회적 분화와 불평등을 확대했다(그 결과 북한 내부에 새로운 도시빈민층이 생겨났다). 동시에 개혁을 합법화하고 사회주의적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했다.

오늘날의 북한 정권은 공산주의와 유교 왕조의 요소들을 함께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풀뿌리 단계에서의 변화'와 '이데올로기의 재해석'이 불러올 수 있는 파장은 현상 유지에서 혁명적 격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후자는 십중팔구 북한의 붕괴와 한국으로의 흡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에서의 권력승계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반도의 정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필자는 최신 저서인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서 경제분야의 성과가 체제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북한의 대외관계 역시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통계학적 모델로 입증했다. 현재 1년 안에 (북한의)체제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약 5%로 이는 1990년대의 최대치보다 줄어든 것이다.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개혁을 뒷받침하는 현재의 '포용정책' 시나리오 아래에서 체제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그러나 이 책에 상세히 기술한 것처럼 경제교류 및 대외관계의 악화는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다.

붕괴.흡수 시나리오는 한국의 정치.경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한국이 10년 동안 지출해야 할 통일비용은 6천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비록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긴 하지만 남한의 경제성장은 통일되지 않았을 경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둔화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이 수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과의 경제적 통합과정은 소득과 부(富)의 불평등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점진적인 통합 시나리오 역시 한국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다. 한국은 투명성이 결여된 관(官)-경(經) 유착이란 심각한 부패문제를 안고 있다. 대규모의 남북 간 경제통합은 그 속성상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 될 것이며, 관-경 유착의 청산을 지연시킬 것이 틀림없다.

경제발전 및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한국은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에 여전히 민감하다. 한국과 외부세계의 통합은 새로운 취약성을 낳는다. 금융 측면에서 한국은 세계 경제와 급속히 통합되고 있다.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취급하는 장부 외(오프밸런스) 거래와 파생상품들은 1994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크게 늘었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위기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이제는 외국인의 역할이 커지고 금융거래가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10년 전에 비해 정치적 개입에 훨씬 둔감하게 됐다.

위기상황에서 한꺼번에 투자자금을 빼내가는 자본도피를 외국인이 선도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이 이미 드러났다. 가장 먼저 돈을 빼내는 사람은 예외없이 정보가 빠른 현지인들이다. 한국은행의 통계는 전망이 불투명한 시기에 외국인들이 주식 매입에 열중하는 동안 한국인들은 주식 매도에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남북간 (경제)통합 작업이 효율적이면서도 투명한 세제(稅制)에 근거한 접근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자체의 경제기반을 확고히 하고 자원동원과 분배.관리.재정 등의 메커니즘을 개선해 나가면서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마커스 놀랜드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