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군이 쓴다면 논밭 내놔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우리가 보상을 더 받자고 이 고생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농사만 짓게 해달라는 겁니다. "

19일 오전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겨울 찬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우리 땅 목숨으로 끝까지 지킨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린 비닐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3~4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 20여명은 이 지역 농민들.

이들은 지난해 10월 미군부대 이전 예정부지로 확정돼 토지수용 공람공고가 나자 "우리 농토 우리가 지키자"며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12월 18일부터 한달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수용 예정지역 24만여평에 달하는 벌판 곳곳에는 '미군기지 이전반대'라고 쓰인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국책사업이라면 우리도 양보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필요하다고 수십년 동안 살아온 우리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

팽성읍 주민대책위원회 이수용(36)총무부장은 "아무런 사전 협의없이 미군이 옮겨온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토지공람을 실시하는 현행 토지수용 방법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평택시청 앞.

"60여년 동안 평택시의 발전을 가로막고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미군은 사죄하라. "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강상원.36)와 민주노총 등 15개 단체회원 40여명은 '용산기지 평택이전 규탄대회'를 열고 "지역주민 의견수렴 없는 일방적인 이전 결정은 원천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평택에는 이미 미군 1만2천여명이 주둔해 있고 4백54만평이 넘는 땅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며 "용산기지마저 평택으로 옮길 경우 3백12만평을 추가 수용할 수밖에 없어 도시 전체가 군사기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 음주 뺑소니 사고로 구속 수감된 미군 온켄(33)병장과 같은 범죄를 비롯해 각종 미군범죄와 군용기 소음, 퇴폐문화 확산 등 온갖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앞으로 팽성읍 주민들과 천막 농성을 비롯, 국방부 항의 방문을 벌이는 한편 오는 3월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 같은 시민단체의 반대 여론과 달리 K-55 미군기지 정문 앞에 위치해 '평택의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평택시 신장1동 신장쇼핑몰 거리의 상인들은 미군기지 이전을 환영하며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노골적으로 환영의사를 밝히지는 않지만 상인들은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미군 이전 계획이 확정됐다"며 밝은 표정이었다.

상인 朴모(39)씨는 "미군들이 먹고 마시는 것 모두가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5백여 상가 주민들은 모두 용산기지 이전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군기지 이전설이 돌면서부터 수요급증을 예상한 상가와 임대주택 등 부동산 거래가 활기를 띠었다. 부동산 관계자는 "수개월 전부터 서울 등 외지인들의 상가 및 주거용 빌라 신축 등 투자문의가 잇따르면서 가격도 10% 이상 높게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미군기지 이전을 놓고 주민 의견이 엇갈리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쇼핑몰 입구에 상인들이 내건 '생존권을 위협하는 데모 결사반대' 현수막이 수개월째 철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기지 평택확장 이전저지'를 위한 시민단체의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여론조사기관이 평택지역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군기지 이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3%가 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37.8%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엄태민 기자<vedia@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