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평생 우리 춤과 소리 지켜온 김천흥 선생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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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인 심소 김천흥(사진)씨가 18일 오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98세.

그는 ‘살아있는 한국 춤의 역사’로 불리던 전통춤 전공자였다. 국악계와 무용계를 통틀어 최고령 원로로 꼽혀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 의 명예보유자인 고인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13세 때인 1922년 궁중음악 양성기관인 이왕직아악부 아악생 양성소에 2기생으로 들어가 궁중음악과 무용을 배웠다. 이듬해 봄 순종황제 50세 생신 경축연에서 춤을 춰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으로 불렸다. 그는 후학을 양성하며 전통 무용과 국악의 보존 및 재현에 힘써 왔다.

해금에서 출발한 그의 예술 인생은 양금 연주 등 전통음악은 물론이고 처용무와 춘앵전 등 정재(궁중무)로 넓혀졌다. 1941년 한성준 선생에게 춤을 사사한 고인은 살풀이와 탈춤 등 민속무까지 익혀 정악, 정재와 민속무를 아우르는 예인이 됐다.

그는 1955년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후진을 양성했다. 60년 대에는 ‘처용랑’‘춘향전’‘흥보전’‘봉산탈춤’‘꼭두각시’‘만파식적’ 등의 무용극을 발표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정재 재현 작업에 몰두하며, 궁중무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기틀을 다졌다. 김영숙·하루미·김매자·김명숙 등의 무용계 제자를 길러냈으며, 이흥구 등 국악계에도 여러 후학을 배출했다. 고인은 생전에 후학들에게 “여러 사람들의 춤 세계를 연구해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인은 이화여전 음악과 강사, 대한 국악원 이사, 국립국악원 자문위원, 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서울시 문화상(1960), 대한민국 예술원상(1970), 국민훈장 모란장(1973), 금관문화훈장(2001) 등도 수상했다. 『심소 김천흥 무악 70년』(1995)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우리춤 이야기』(2005년)등의 저서가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운(재미)씨 등 3남2녀가 있다.

한편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은 한국국악협회(이사장 이영희), 한국무용협회(이사장 김복희)와 함께 22일 오전 10시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고인의 영결식을 열기로 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02-590-2609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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