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해 피해 현장, 정부 조사단이 헬기서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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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치우는 북한 내각 직원들
북한 당국은 조속한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해 당.군.민이 수해 복구작업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 내각의 직원들이 평양 대동강 유역 주변 도로에서 강물의 범람으로 유입된 토사를 치우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배포한 사진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온 천지가 흙탕물에 잠겼다."

통일부 산업협력팀의 정동민 팀장은 19일 북한의 홍수 피해를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흘 전인 15일 헬기를 타고 함경남도 단천에서 평양으로 오면서 홍수 피해 현장들을 살펴봤다. 정 팀장은 "비가 그쳤지만 강에는 흙탕물이 여전히 세차게 흘렀고, 논밭도 다 흙탕물 천지였다"고 말했다.

정 팀장을 비롯한 15명의 조사단은 단천의 지하자원 실사를 위해 지난달 28일 북한에 들어갔다. 조사를 마친 다음 8일 평양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북측으로부터 '폭우 때문에 헬기가 못 뜬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엔 "평양 가는 길이 모두 끊겨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단천에서 일주일 동안 발이 묶였다. 그 사이 평양엔 580㎜의 집중호우가 퍼부었다.

조사단 일원인 한국교통연구원의 안병민 박사는 "단천에 묶여 있는 동안 '평양~함북 대흥 사이의 도로는 16군데가 끊겼다' '평원선(평양~원산 철도)에선 굴 하나가 다 무너졌다' '함흥에 양동이로 쏟아붓듯 400㎜의 비가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평양까지 전화선도 끊겼다.

남측 조사단은 다행히 헬기가 뜰 수 있었던 15일 평양으로 돌아왔다. 안 박사는 "착륙장에서 평양 시내로 진입하는 길 양편의 농경지도 다 침수됐고 곳곳에 강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 천지였다. 시내 지하차도 역시 잠겼다"고 말했다.

40년 만의 대홍수를 겪은 평양의 상처는 깊었다. 대동강이 넘쳐 고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 구역, 평천 구역은 2m 깊이로 물이 찼다. 대동강의 한 섬인 양각도의 골프장도 잠겼다. 전기 공급시설이 침수돼 소안~평양역, 낙랑~서평양 구간의 전차 운행이 중단됐고, 시민들은 걸어서 출퇴근했다. 대동강 지류인 보통강 유역의 주민도 대피했다. 외국인 전용 호텔인 보통강 호텔도 손님들이 모두 떠났다고 한다.

평양 바깥의 지방도 막대한 피해를 봤다. 농경지 10만 정보(9억9천㎡) 가 침수돼 피해 정도가 지난해 홍수 피해의 다섯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18일 개성을 다녀온 영통포럼의 노영호 사무총장은 "개성공단에서 개성 시내로 들어가는 2차로의 곳곳이 20~30㎝ 크기로 파여 있었다"고 전했다. 평양~개성고속도로(170㎞)는 홍수 피해 때문에 두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곡예운전을 하면서 4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고 했다.

비가 그치자 북한은 군과 주민들을 총동원하는 비상동원령을 내려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 북한 중앙TV는 매일 저녁 빨간 글씨로 '큰물난리 비상경보'라며 경각심을 돋우고 있다. 북한 당국은 중앙정부와 각급 지방에서 '큰물피해복구지휘부'를 만들었다. 피해가 극심한 평안남도와 황해도에서는 군 동원령을 내렸다.

◆평양 피해 왜 컸나=연세대 공대 조원철(토목과) 교수는 ▶대동강 강바닥에 토사가 많이 퇴적돼 천정천 상태가 됐으며 ▶강의 제방이 낮고 ▶강 상류의 산에 나무가 없어 비를 담아 둘 곳이 없으며 ▶시내 하수관이 낡고 좁은 것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강 폭이 좁은 보통강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안성규.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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