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쓰나미 / 주가 폭락에 엔고 … 일본 '더블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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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닛케이지수가 7년4개월 만에 최대 낙폭으로 떨어지며 금융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졌던 17일 밤.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ヶ關) 관청가 한복판의 재무성 건물의 불은 다음날 새벽까지도 꺼지지 않았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11엔대에서 114엔대로 엔고 진정." "뉴욕 증시 반등하고 일본도 야간 주식시장에서 대부분 종목 상승세로 전환."

이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재할인율 인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탓이다.

시노하라 나오유키(篠原尙之) 재무관 방에 모인 간부들은 금융시장이 다소 진정된 데 안도의 한숨을 돌리면서도 "일본이 서브프라임 충격과 엔캐리 자금 환수라는 '더블 펀치'를 맞았다"며 충격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분위기였다.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쓰나미 제4막'의 무대는 일본?=일본은 서브프라임 론 사태의 진원지가 아님에도 닛케이지수가 7월 최고치에서 이달 17일까지 16.4% 떨어졌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하락률을 크게 웃돈다. 엔-달러 환율도 지난달 121엔에서 10엔 가까이 떨어졌다. 이처럼 일본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도쿄 증시 거래의 70%를 점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을 내던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쇼크로 투자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돈을 거둬들이면서 그동안 수익을 꽤 올렸던 일본이 1차 대상이 됐다. "산 가격에서 20% 떨어지면 무조건 판다"는 일본의 보수적 기관투자가들의 매도도 가세해 낙폭을 키웠다.

헤지펀드들의 엔캐리 거래 청산에 따른 '엔고'가 또 하나의 불안 이유다. 엔고는 결국 수출에 의존하는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심리가 시장에 번지면서 이것이 주가 급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8일 "이번 사태의 제1막이 미국 내 펀드의 손실 확대 우려라면 제2막은 유럽으로의 불똥 확산, 제3막은 미 경기 후퇴, 그리고 제4막은 일본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라고 진단했다.

엔캐리 거래 청산으로 엔고가 확산될 경우 이는 최근 일본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쏟아부었던 외채 펀드의 손실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결과 거액의 자금 유출 사태가 빚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택 버블 등을 야기한 전 세계적인 유동성 국면이 본격적인 '역회전'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의 '진도'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진앙지는 '유동성'의 제공처였던 초저금리 국가인 일본이 될지 모르고, 이는 또 이웃 한국의 금융시장에 불똥이 튈 가능성을 떨치기 어렵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외환시장이 다시 엔저로 급속히 회귀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일본 경제가 전후 최장의 경기 회복 국면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다 엔저를 지탱해 온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던 엔캐리 거래의 매력이 상당 부분 상실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는 연 4.75%인 데 비해 최근 수주간의 엔화 변동률은 5%를 넘어섰다. 금리 차로 인한 이익 분을 엔고로 상쇄한 상태다.

일본 금융 당국은 일단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23일로 예정돼 있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당초 올리기로 계획했던 금리를 동결하고 시장의 추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 FRB가 다음달 금리를 0.25~0.5%포인트 인하하면 미.일 간의 금리차는 그만큼 줄어들어 엔캐리 거래를 더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초비상 걸린 일본 기업=증시 하락과 급속한 엔고는 일 기업들에 큰 타격이다. 소니.캐논.마쓰시타(松下)전기산업.도요타 자동차 등 우량 종목이 몰려 있는 도쿄 증시 1부의 경우 최근 1개월 사이에 시가총액이 99조 엔이나 날아가 버렸다. 도요타의 경우 1엔 엔고가 진행되면 연간 영업이익이 350억 엔 줄어든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3엔이 절상된 지난주 16일과 17일 이틀 사이에만 도요타는 연간 기준 1000억 엔이 넘는 이익을 공중으로 날린 셈이다.

일본의 주요 업체들이 올해 환율로 상정한 달러당 115엔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올해는 엔저로 갈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던 각 업체들도 비상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매출의 절반을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혼다의 경우 지난달 25일 올해의 상정 환율을 달러당 115엔에서 117엔으로 수정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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